(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망우리위원회)는 2017년 교보생명의 후원으로 중고생 대상의 망우역사문화공원 퀴즈 프로그램 ‘도전! 러닝맨(Learning Man)’을 시작했다. 미래 세대 청소년들에게 애국지사 등의 묘를 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청소년의 가슴에 나라 사랑의 나무를 심는다는 보람과 세계 최초, 유일의 묘역 퀴즈 프로그램이 아닐까 하는 자부심으로 성황리에 몇 년 동안 진행했다. 그 행사의 본부가 13도 창의군 탑이 우뚝 서 있는 저류조 공원이었다. 지금은 망우역사문화공원 제 3주차장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2018년 8월 15일 광복절, 그날은 폭염으로 인해 묘역을 돌지 않고 13도 창의군 탑 앞의 게이트볼장을 빌려 골든벨 형식으로 진행했다. 행사 종반에 13도창의군탑에 꽃을 바치고 참배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중에 노년의 여성 세 명이 눈에 띄었다. 마침, 일행 중에 망우역사문화계승협회 이사장 김진만 선생이 있었다. 망우동 주민 김진만 선생은 오래전부터 망우리공원을 항일애국공원으로 조성하자는 운동을 주도하며 무궁화 심기나 애국지사 묘역 참배를 꾸준히 해온 분이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 여기 참배 오셨나요? 이 여성분들은?” “아,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는 불수도북(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이 한눈에 보인다. 그 산들의 능선 위로 흰 구름 떠 있는 맑은 가을의 어느 날, 망우리공원 입구의 느티나무 아래에 대학 동기인 사진가 창섭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망우리 사진을 찍고 싶다길래 안내해 주기로 했다. 위로 올라가면 좌우로 갈라진 길이 나온다. 왼쪽 길 바로 옆에 연보비(어록비)가 서 있다. 맨 위에 ‘유관순 열사(1902~1920 독립운동가)’, 그 아래에는 열사의 유언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가 새겨져 있다. “아니, 유관순 열사가 여기 있다는 말인가?” “그게 사연이 좀 길어. 안쪽으로 들어가지.” 데크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비석이 보인다. 앞면에 한문으로 ‘이태원 묘지 무연분묘 합장비’, 뒷면에는 ‘소화 11년(1936) 12월 경성부’라고 새겨져 있다. 뒤편에 합장묘가 있다. “망우리묘지가 1933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이태원, 노고산(서강대 뒷산), 수철리(금호동), 미아리 등의 공동묘지가 없어지면서 기존 묘가 이장되었지. 노고산과 이태원의 무연고 묘가 망우리로 왔어. 예전에는 그 설
망우리 사잇길은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조성된 인문학길이다. 삶과 죽음의 사이, 어제와 오늘의 사이, 그와 나 사이를 걸어가며 경계를 넘나들고 경계를 허무는 길이다. □ 연재를 시작하며 태양이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는 ’한여름', 망우산 능선의 ‘구리(한강) 전망대’에 올라 저 멀리 한강을 내려다본다. 후덥지근한 대기의 온도에 등에는 땀이 흐르지만, 가끔 불어오는 바람과 탁 트인 시원한 풍경에 잠시 무더위를 잊고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2008년 월간지 《신동아》에 「망우리별곡」을 연재하고 2009년 4월 『그와 나 사이를 걷다-망우리 비명으로 읽는 근현대 인물사』를 출간하여 망우역사문화공원(이하 ‘망우리공원’, ‘망우리’로도 쓴다)의 인문학적 가치를 세상에 처음 알렸다. 그리고 새로 찾은 인물을 추가한 개정판을 거듭하여 『망우역사문화공원 101인-그와 나 사이를 걷다』(2023)라는 제목으로 완결하였다. 1933년 개장하여 1973년 가득 찬 망우리공원은 그 40년의 기간이 말해주듯 우리 근대의 새벽을 연 인물이 모여 있다. 애국지사는 물론 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선구자들이 있으며 좌익과 친일파도 함께 있다. 그리고 서양의 묘지와는 달리, 망우리는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