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대목 썰렁한 호프집…” 얼어붙은 소비 동향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중앙, 12.26자). 다행인 것은 정부안에서 전액 삭감됐던 지역화폐 예산이 국회에서 3525억 증액됐다는 전언이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경제 어려움 속에서 민생과 취약계층을 지키는데 더욱 힘을 기울이겠다. 지역화폐는 이미 내년도 예산에 반영했지만, 앞으로 추경 등을 통해 수요에 맞춰 추가 편성하겠다”고 밝혔다(경기신문, 12.26자). 지역의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목하 매출 부진과 부채 상환에 정신 줄을 놓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겐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다. 물론 경제가 잘 돌아가고, 대·중소기업이 함께 발전하면, 국민의 소비가 늘면서 자영업자도 덩달아 신바람이 날 것이다. 그러나 경기 전망은 매우 부정적이다. 긴장해야 한다. 지역화폐로 지역 내 소비를 활성화하지 못하면 종국엔 국가를 지킬 수 없게 된다. 통화량은 정해져 있는데 지역주민이 대기업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하게 되면, 지역의 돈은 중앙으로 갈 수밖에 없다. 자영업자의 눈물은 마를 겨를이 없다. 이런 것 막아보자는 게 지역화폐다. 우리나라엔 편의성이 좋은 화폐 지불 시스템이 많다. 그럼에도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지난 4일, CNN은 “한국 260조 투입했지만 세계 최저 저출산 해결 불충분”을 보도했다. 지난 8일, 골드만삭스는 “한국 저출생, 2050년엔 나이지리아보다 경제 후퇴”를 예상했다. 2022년 현재 우리나라 출산율은 0.79명 내지 0.75명이다. 국민이 사라지고 있다. “경제는 결국 우상향 한다.”는 자본주의적 신념이 우리나라엔 통하지 않을 수 있다. 260조원은 어디에 쓰였는지, 미래 재앙에 대비해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현금 지원으론 해결 어렵다.”는 일부 지적이 있다. 책임 있는 발언은 아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사라지니까 아이를 낳아라.”는 애국심 호소는 더욱 아니다. 청년의 상당수가 비정규직에 저임금을 받는 현실. 금수저가 아닌 바에야 어찌 아이를 출산할 수 있겠는가. 헝가리 해법(신혼부부 4000만원 대출, 아이 셋 출산 전액 탕감) 실시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미 경남 창원시는 시행 중이다. “신혼부부에 1억 대출, 아이 셋 낳으면 전액 탕감”이 그것이다. 그런데 누가 아이를 셋이나 낳을 수 있을까? “신혼부부에 무이자 1억 대출, 아이 한 명에 5000만 원 탕감, 아이 둘에 1억 원 탕감, 아이 셋 낳으면
며칠 전, 어느 노(老)교수가 강의 도중에 “이태원 사고는 거기 놀러간 젊은이들 본인의 책임”이라고 했단다. 한 청년이 강의 관리를 하는 필자에게 물었다. “그 교수님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희생자 중엔 교육생들의 친구, 가족도 있을 수 있는데… 옆에 있는 교육생들 모두가 수근 대며 분노했다.”며 울먹였다. 필자는 “강단에 선 모든 사람의 말이 맞는 건 아닙니다. 상식의 관점이 다른 사람일 수 있어요.”라고 대답해줬다. 잠깐의 시간에서 ‘진짜 민심’을 읽을 수 있었다. 일부 언론이 정치검찰권력 카르텔을 옹호하고 대변하고 있을지라도, 바른 생각을 지닌 ‘청년들’이 있었다. 깊은 상념에 잠겼다. 지식인들은 지금 어디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강조하건대, 분노하고 망각하고 다시 분노하는 재난의 쳇바퀴에 국민의 미래를 맡겨선 안 될 일이다. 그런 점에서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짧은 문장. 필자는 이를, 또 다른 이름의 ‘방관’이라고 본다. 무엇하나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고, 국정 책임자들의 진지한 반성과 사과도 없었다. 2014년 4·16 세월호 참사 때도 똑같았다. 재난을 당하는 건 개인 몫이고, 재난은 개인이 알아서 피해야 하고, 결
국정 성공은 언론과의 관계에 달렸다. 언론과 적대적 관계를 맺어선 정부의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언론자유 보장은 민주주의 근간. 권력의 견제는 언론의 역할이다. 3권 분립 원리상, 입법부와 사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지만, 한계가 있다. ‘공직이라는 한 울타리’… 까닭에, 정부에 대한 진정한 견제는 언론자유에서 나온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11일~16일)에 MBC 취재진을 전용기에 탑승시키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언론계 5단체(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는 정부와 전면전을 불사키로 했다. 정부와 언론이 긴장 태세에 있다. 현 정부의 복합위기가 증폭되는 분위기다. 작년에, 국경 없는 기자회는 ‘2021년 언론자유지수’를 발표했다. 한국은 세계 42위. 아시아 1위를 마크했다. 언론자유 선진국인 영국은 33위, 미국은 44위였다. 되레 미국은 한국보다 낮은 순위였다. 아태지역 언론자유의 모델로 인정받은 한국 언론이 퇴보와 진보의 갈림길에 놓이게 됐다. ‘관용성’과 ‘개방성’이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특징이라면, 이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억압’과 ‘폐쇄’의 방향
10월의 끄트머리에서 청춘 154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지경이다. 고인들의 명복을 빌 뿐이다. 정부는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최우선 순위의 수습을 강조했다. 하지만, 예방할 수 있었던 후진국형 인재(人災)였다. SBS는 지난 28일, “경찰이 핼러윈 기간 동안 총 30만 명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알고 있었다. 사전 통제 부족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사건 발생 하루 전, 28일에도 이태원엔 사람이 엄청 많이 몰렸다. 참사 조짐이 있었다(연합뉴스, 2022.10.30.). 압사 사건 당일, 이태원엔 서울시장은 물론이고 용산구청장, 용산지역구 국회의원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행정은 부재중’이었다. 2021년 핼러윈 축제엔 17만 명이 몰렸다. 지자체 공무원과 경찰 4600명이 투입됐었다. 올핸 200여명 투입. 인원 통제 인력이 아닌, 마약 단속 병력이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경찰이나 소방 인력이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을 하고 있고요.”라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 29일 밤부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국민이 바보가 된 순간이다. N
누군가 “최고로 가치 있는 자유는?”이라고 물으면, ‘언론 자유’라고 할 테다. “언론 자유는 모든 자유를 자유롭게 하는 자유”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는 사회를 정의롭게 한다. 세상을 진보케 한다. 언론이 난세를 성토할 때면, 옳지 않은 것이 바른 곳으로 간다. ‘가짜뉴스’만 아니라면, 언론의 자유는 언제나, 어디서나, 보장돼야 할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다. 언론 자유, 언론 보도, 언론 책임… 지난 20일, 유엔서 열린 바이든의 기금모금 행사에서 사단이 났다.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 윤 대통령의 ‘막말’이 있었다. 살다보면, 욕 할 수도 있다. 인간의 모습 중 하나다. 하지만 국제외교무대였다. 대통령의 언어로는 부적절했다. 사과하면 끝날 일일 수도 있다. 문제는 ‘진실’ 왜곡.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란다. 나아가 ‘언론 탓’이란다. 보도로 인해 국익이 훼손됐단다. 본질은 대통령의 태도다. 국익은 국가의 이익일까. 혹은, 국민의 이익일까.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는 “국익은 권력자들의 특수한 이익”이라고 했다. 살피건대, 국익은 ‘자유’의 상위 개념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진
윤석열 후보 시절 공염불 수사(Rhetoric), 제1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Investigation). 정치권은 내전 중이다. 국민이 보기엔 수사(修辭)와 수사(搜査)는 정치가 아닌데 말이다. 문제는 경제이건만, 정치는 ‘문제 그 이상’이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의 ‘외교 참사’는 국내 기업들에게 막심한 피해를 가져다 줬다. 무능한 정치는 국익 손상과 직결된다는 것. 확실하게 드러났다. 지난 5월,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은 우리나라에 내방해 삼성(반도체)과 현대(전기차)의 ‘대미 투자’ 실익을 챙겼다. 얼마 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발효되면서 현대의 전기차는 보조금 지급서 제외됐다. 미국은 IRA(Inflation Reduction Act)뿐만 아니라 반도체, 바이오에 관해서도 미국 내 연구와 제조를 강제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방침에 따라 한국의 미래에 위기가 닥쳤다. 기회는 있었다. 펠로시(Nancy Pelosi) 미 하원 의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다. 펠로시를 상대로 노력했어야 했다. 정부 역할이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국정원, 외교부와 주미 대사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의 총체적 안이함을
지난 21일 ‘수원 세 모녀 사건’이 발생했다. 정치권, 행정부 곳곳에서 ‘특단 조치’를 말한다. 공동체주의와 연대가 대안이란다. 좋은 말이지만 현실과 괴리가 있다. 두 가지 경우를 보자. 먼저,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년 장애인현황 통계’의 등록장애인은 263만3000명이다. 전체 인구 대비 5%대다. 실제 장애인 수는 더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 얘기다. ‘장애인이라는’ 낙인, 수치심 등은 등록과 신고를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 ‘된장녀’, ‘된장남’(의존적 과소비자, 혹은 여성과 남성을 비하하는 신조어)이라는 단어엔 ‘불편한 진실’이 함의돼 있다. 어쩌면 된장녀, 된장남은 정신지체나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행태일 수 있다. 한국 사회에는 정신질환과 장애를 숨기는 문화가 있다. 장애인 등록과 정신과 치료를 터부시하기도 한다. 등록과 신고를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과 2022년의 ‘수원 세 모녀 사건’은 무등록, 무신고가 공통점이다. ‘송파 사건’ 이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긴급복지법 등이 개정됐다. 사회보장 정보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지자체별로 ‘찾동(찾아가는 동주민센터)’도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사무
폭우 속 반지하 일가족 3명 사망. BBC는 “기생충 반지하의 진짜 비극”을 집중 조명했다. G5 국가를 꿈꾸던 대한민국이 외신들의 조롱거리가 됐다. 국민들은 넷플릭스 세계 1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부끄러움을 달래는 중이다. 비극이 발생했던 지난 9일, 비상시국에 우리의 대통령은 “공무원 11시 출근”을 지시했다.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집중폭우 속에서 공무원들은 이미 비상근무체제에 들어섰고, 직장인들은 대부분 이른 아침부터 출근을 서둘렀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비 온다고 대통령이 퇴근 안 하나” “폭우 피해 있었나?”라고 해 국민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국민은 지금 대통령과 대통령실에 대한 정치 효능감 ‘제로’ 상태다. 공자는 정치를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民信)”이라고 했다. “먹을 것이 충분하고, 병사가 충분하고, 백성의 신뢰를 얻는 것이 정치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고 덧붙였다. 현대의 상황에 맞춰 해석하면 정치란 경제, 안보를 튼튼히 하고 국민과의 신뢰를 돈독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경제와 안보는 낙관적이지 않다. 정부신뢰는 20%대다. 재해재난 속에서 보여준 대통령과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 지난 26일 국무회의서 의결됐다. 8월 2일에 공포·시행된다. 경찰의 반발도 반발이지만 여론은 부정적이다. 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총경은 대기발령을 받았다. ‘검찰은 되고 경찰은 안 된다’는 이중 잣대의 적용은 박지원 전 국정원장 말대로 ‘검로경불’이 아닐 수 없다. “인사(人事) 앞에 장사(壯士) 없다”는 것이 공무원 조직이다. 경찰공무원의 1인 시위와 릴레이 삭발은 어떻게 보면 목숨을 내건 것과 진배없는 행동이다. 류 총경의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명언’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에 한 말이다. 유명세를 떨친 이 말은 윤 대통령에게 되돌아갔다. 대통령은 경찰의 집단행동을 “국기문란”이라고 경고했지만, 도대체 영(令)이 서지 않는다. 한편, 류 총경은 “행안부 경찰국은 경찰의 정치적 중립 훼손”이라고 했다. 이는 내무부 치안본부가 왜 경찰청으로 독립했는가와 맞닿아 있다. 청년 박종철(1987)과 이한열(1987)이 왜 꽃다운 나이에 죽었을까를 생각해봐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경찰의 정치적 중립은 시민의 인권과 생명 보호 측면서 중요하다는 얘기다. 다만, 한 가지. 경찰청 독립(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