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80년을 전후하여 3년간을 경기도의 한 기초자치단체의 면사무소에서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담당하는 팀의 일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그린벨트는 2평짜리 돼지 축사 하나 마음대로 못 지을 정도로 강력한 규제였다. 축사 신축은 아예 허가가 불가능하다보니 무허가로 축사를 지은 주민에게 철거를 최고하고, 이행하지 않을 경우는 팀원 모두가 현장에 나가 강제 철거를 했다. 돼지나 오리 두세 마리 있는 축사를 해머나 빠루(긴 장도리)로 철거를 하노라면 죄를 짓는 심정이었다. 그냥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철거하는 것을 보고만 있는 주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욕설을 하며 거세게 항의하거나 막대기 등으로 폭력을 가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현장에 있었던 공무원들이 맞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린벨트 지역에 불법행위가 이루어진 것을 몰랐거나 그린벨트에 신축이 허용되지 않는 것을 모르고 허가하여 해당 공무원들이 징계처분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 또 뇌물을 받고 그린벨트의 대장을 위변조하여 건축이나 개발행위를 탈법적으로 허용했다가 적발되는 경우도 빈번했다. 급기야 정부는 그린벨트 건축물대장 변조와 위조를 차단하기 위해 항공촬영으로 건물과 지형물 지도를 작성·관리했다. 정부가 그
도시화는 영국에서 18세기 중엽에 시작된 산업혁명을 계기로 영국에서 발원하여 유럽 및 전 세계로 확산됐다. 산업화의 진전으로 농촌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주택이나 도시 시설의 건설이 불가피해지면서 도시화가 급속히 진전됐다. 도시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뿐만 아니라 각종 교육과 문화적 편리함을 제공한다. 반면, 환경오염, 열섬현상, 소음, 범죄, 교통사고, 이웃 간의 갈등 등의 부작용을 우리가 익히 알고 있거니와 도시생활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이다. 지금 인간이 체험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인간의 무분별한 도시개발이 원인이며 도시화가 빚어내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 전염병이라는 사실은 예상하지도 못했고 지금 우리가 그것을 처음 겪고 있다. ‘유럽연합 공동연구센터(JRC)’는 세계인구의 76%가 도시에 집중해 살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조사한 '2018년 도시계획현황 통계'를 보면, 한국 국민의 92%가 국토면적의 17%에 불과한 도시에 모여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에 인구가 모이게 되면 도시개발이 (인구이동이 먼저인지, 도시개발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이
필자는 공직의 상당 기간을 통상과 투자유치 업무에 종사했던 터라 해외 출장이 잦았다. 동행하는 기업인들의 상담일정을 차질없이 진행하고 숙식 등을 보살피는 일이 임무이므로 이국적 도시경치를 감상할 여유도 없이 항상 피로와 긴장 속에서 일해야만 했다. 특히 까탈스러운 상사나 도의원과 함께 출장할 때는 하루빨리 귀국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위로를 준 것 중의 하나가 삼성전자 등 한국을 대표하는 굴지 기업이 설치한 도로변과 건물의 빌보드와 전광판이었다. 귀국을 위해 그 나라 공항에 도착했을 때 한국 항공사 마크만 봐도 벌써 귀국한 것 같은 평안함이 깃들었다. 외국에서 그런 것들을 보면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이 생긴다. 필자는 삼성에 빚진 것은 없지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한국의 경제발전과 국가 명예를 향상시킨 것도 이유지만 개인적으로도 이 기업이 생산한 전자 제품들이 반평생의 반려자였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사는 지역에 삼성전자가 있어 이웃이라는 친근감을 갖고 있다. 지난 6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언론 앞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것을 보고 몹시 안타까웠다. 더 나아가 이 회장의 사과 후에 노조와 진보단체들이 진정성이 없다며 삼성사옥 앞에서
최근 몇몇 정치인의 가벼운 언어들이 그들의 사회적 무게는 물론 우리의 영혼까지 가볍게 하고 있다. 지난주 부천의 방송사 선거토론회에서 이상희 후보와 차명진 후보의 세월호 사고 관련 논쟁은 양 후보와 정당, 유권자 모두에게 무익한 일이었다. 특히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의 씨앗을 만들고 대부분 세월호 유가족들의 상처만 더 키운 결과만 낳아 더욱 안타깝다. 관악구의 김대호 후보가 30~40대 국민의 정서에 대한 개인적 평가를 전체가 그런 것처럼 일반화해 발언했다. 김후보가 이 세대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만났길래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한 세대에 대한 편향적 의식은 공정해야 할 공직자가 절대 품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확신했어도 우선 그들의 사고는 어디서 오는 것인지 통찰하고 어떻게 포용해야 할지 고민했어야 했다. 코로나 19 확산의 원인을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에게 돌리고 대한감염학회가 중국인 입국금지 제안을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한 박능후 장관은 철저한 아마추어 공직자다. 세계적 펜데믹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책임이 국가에 있는데, 도대체 어느 나라의 최고위 보건당국자가 공개석상에서 거짓을 말하면서 자국민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사례가 있는가. “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 말은 2천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최초로 정의한 금언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당시 그리스 지역에서 사람들이 도시국가(polis)를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인간은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다고 주장했다. 로빈슨 크루소와 척 놀랜드 (영화 ‘캐스트어웨이’ 주인공)가 각각 28년과 4년 동안 무인도에서 살 수 있었던 것도 난파된 배와 항공기에 있었던, 사회가 만든 물품과 식료품, 그리고 사회에서 터득한 삶의 지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공동체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게 ‘인간의 운명’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가 멈춰버렸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장 우선적 생활준칙이 되었기 때문이다. 본래 이 말은 ‘전염병의 확산을 막거나 늦추기 위해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는 감염 통제 조치 혹은 캠페인’을 말한다. 하지만 이 현상이 장기간 지속하다 보니, 사람들 간 마음의 거리도 멀어져 공동체 소멸 위기국면으로 치달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등, 생활공간에서 사람 간의 거리가 좁아지면 인사말을 건네는 것은커녕 눈길을 맞추는 것조차 금기시되고 있다.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
행정위원회는 법령 또는 행정기관 내부 지침에 의거 복수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중요한 정책 기획, 의사 결정, 조정을 하는 합의체 조직이다. 2015년 기준 정부의 위원회 수는 549개이며, 경기도의 경우 2018년 기준 216개에 이른다. 위원회의 순기능은 행정기관의 조력자와 민원인(이해관계자)의 옹호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역기능 또한 적지 않다. 행정전문가 의견, 필자의 경험, 간접적으로 입수한 사례를 토대로 문제점을 정리하고자 한다. 먼저 의사결정의 지연이다. 민원인 A는 2018년 10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경기도의 재단법인 설립허가 거부처분 취소 행정심판’ 청구서를 제출하였으나 청구서를 제출한 지 9개월 만에 재결이 이루어졌다. 90일 이내에 재결해야 한다는 행정심판법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둘째, 위원회가 여러 사람으로 구성돼 책임이 다수에게 분산되므로 책임전가 현상이 발생한다. 민원인에게 불리한 결정이 내려져도 이의제기를 할 수가 없다. 결정은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 한 것이고, 행정기관 또한 위원회가 결정한 것이라고 변명하며 책임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위원회는 행정기관의 입장에 서는 편향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2016년 4월 진도 7.8 규모 지진이 에콰도르 서부해안을 강타했다. 660명이 사망하고 1만6천여 명이 다친 대재난이었다. 네 살 난 ‘데이코’라는 소방대 소속 구조견이 생존자 7명을 구하고 사망한 소식이 지구촌 사람들에게 감동과 안타까움을 줬다. 급성 호흡부전과 탈진이 사인이었다. 훈련과 명령받은 대로 나흘 동안이나 밤낮없이 수색 활동에 몰두하느라 몸이 지친 상태라는 것을 - 심지어 목마른 것조차 - 몰랐다. 데이코의 순직을 통해 재난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된다. 경기도 인재개발원에서 교육생들 대상으로 실시하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꼭 들어가는 과목이 심폐소생술이다. 보통 교육 끝 순서에 이 과목을 넣기 때문에 장시간 교육 참석에 심신이 지쳐 있고, 설마 심폐소생을 직접 사용할 일이 있겠느냐 하는 안일한 생각에 교육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몇 달 전 아파트 1층에 심장충격기 (AED)가 비치된 것이 눈에 띄었다. 2012년에 비치했다고 하는데 이제서야 관심을 끌게 된 것이다. 그러다 문득 ‘공무원으로 퇴직한 사람이 우리 아파트 라인이나 공공장소에서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용법을 몰라 인명구조에 나서지도 못한다면 얼마나
나는 조물주 즉 하나님에 의한 우주 창조론을 믿는다. 하나님은 6일 동안에 걸쳐 우주 만물을 창조하였는데 맨 마지막 날에 흙으로 인간을 만들었다. 창조작업을 끝낸 후 하나님의 말씀 첫마디는“(자신이 만든 모든 형상과 생물체가) 보기에 참 좋았더라.”였다. 깨끗한 강, 해맑은 공기와 햇살, 푸른 풀과 나무들, 평화로운 동물들, 한 쌍의 인간. 얼마나 보기가 좋았을까? 상상만 해도 느낌이 온다. 하나님은 특별히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이브)를 지상 낙원인 에덴동산에 살게 하면서 두 가지를 명령했는데 그 첫째가 만물을 잘 다스리고 지키라는 것이요, 둘째는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선악과)을 따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피조물을 잘 다스리는 것은 뜻일까? 이 말씀의 참 뜻은 “정복하고 권세를 부리라”는 뜻이 아니라 한 청지기로서 섬기라” ”아름답고 쓸모 있게 가꾸라”는 말이다. 불과 십수 년 전부터 지구촌 곳곳에서 이전보다 더 심각하고 급격히 늘어나는 재앙을 보노라면 가는 머지않아 지구의 생명이 다 끝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석유, 지하수 등을 땅속으로부터 뽑아 써 왔다. 지하철, 상하수도 등 각종 지하 시설을 건설하고, 심지어 핵폐
(전편에 이어) 두 번째 해답은 우리가 공직생활을 통해 터득한 경험과 지식을 묵혀 두지 말고 활용하자는 것이다. 공직자들은 최소한 법과 논리를 배우며 합리적이고 공익적인 일을 해왔다. ‘공직은 나의 천직이었고 공무원의 경륜은 소중한 사회적 자본’이라는 것이 나의 소신이며, 지금도 제2의 공직자라는 자세로 살아가고 있다.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을 해보자는 것이다. 토목, 교통, 건축, 에너지, 생활민원, 철도, 기업지원, 통상, 위생, 범죄수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몸으로 익힌 전문성과, 국가 흥망성쇠의 중심에서 꿋꿋하게 일하며 나라를 지켰던 헌신적 삶을 겪었는데, 무엇을 못 하겠는가. 위의 두 작품을 통해 - 비록 허구의 창작물이지만 - 주인공들이 누구에게는 늘고 쓸모없어 보였지만 나름대로 즐겁고 생산적인 일을 해냈다는 격려와 영감과 얻을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도 노인강도단처럼 사고 치는 마음으로 일단 무슨 일이든 시작해 보자. 선배 공직자 한 분은 지인들과 함께 농지를 구매하여 ‘도시농업공동체’를 설립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텃밭을 제공하기도 하고, 학교 등을 찾아가거나 방문자들에게 영농과 마음 치유 교육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선배는 고독사한 사람들의
2018년 한국인 평균 수명은 82.7세로서 내가 공직에 첫 발을 디딘 1970년대보다 19년이 증가했다.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 수명이 곧 90세가 될 때가 머지않고 100세까지 늘어날 전망까지 나온다. 노인 인구 비율을 나타내는 65세 인구는 2018년 현재 14.8%로서 노령사회에 진입했고 노령화율은 세계 1위이다. 장수는 축복일까, 재앙일까? 공직 은퇴자들이 장수를 축복으로 누리려면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어야 할까? 이에 대한 해답을 말하기 전에 먼저 두 개의 예술작품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최근 서울 대학로에서 연극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를 관람했다. 스웨덴의 ‘잉엘만순드베리’의 소설이 원작이며 줄거리는 이렇다. 요양원에 입소해 사는 79세의 메르타 할머니는 정부의 지원금이 깎였다는 이유로 종사자들의 근무태도와 음식의 질이 떨어지고 외출도 불허하는 등 전반적으로 서비스의 질이 점점 나빠지는 것에 강한 불만을 품게 된다. 그러다 TV에서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는 교도소의 내부생활을 자주 보게 접하게 되고, 결국 감옥에 가기 위해 요양원에 있던 4명의 친구와 함께 요양원을 탈출한다. 박물관의 그림을 훔치고 그림을 돌려주는 대가로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