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업시간에 책 한 권을 느리게 읽는 슬로리딩, 혹은 온 책 읽기라는 교육 방식이 꽤 혁신적이었다. 정해진 교과 시간에 교과서 없이 수업을 진행하는 일은 교사와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도전적인 수업 방식이었다. 처음 우리 반에서 온 책 읽기를 진행할 때 학년 부장 선생님이 “그런 식으로 수업하면 학습 결손 생긴다.” 같은 반응을 보였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온 책 읽기의 정확한 기원이 어디인지, 누가 가장 먼저 시작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설이 있고, 한국의 몇몇 선생님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초기에 드문드문 퍼지던 온 책 읽기는 교육과정 재구성과 결합해서 몇 년 동안 각종 교사 연수에 필수코스처럼 등장했다. 그러다 국어 교과 단원에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1년에 정해진 시간 이상은 반드시 진행해야 하는 국가 공인 교육과정이 되었다. 책을 함께 읽는 활동이 국어 교과의 필수 과정이 되면서 교사의 집단 지성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온 책 읽기를 위한 책 선정에서부터, 교육과정에 맞게 재구성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 드는데 앞서 수업을 진행한 분들이 수업 자료나 피드백을 남겨
얼굴은 ‘얼의 꼴’이다. 법정 스님이 한 말이다. 얼은 넋이고 꼴은 겉모양이니, 얼굴은 넋의 겉모습인 셈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정신의 줏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고들 한다. 법정 스님의 말대로라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넋에 따라 삶의 궤적이 그려지기는 하지만 현재의 삶이 곧바로 얼굴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얼굴에는 삶은 없고 정신의 줏대만 있다. 졸업논문과 연봉계약서와 등기부등본은 없고 뼈와 살과 주름만 있다. 뼈와 살과 주름을 따라서, 부딪고 보듬고 벼르는 생각의 흔적만 있다. 얼굴에는 거짓이 없다. 화장이나 성형으로도 감춰지지 않는다. 뼈를 깎고 주름을 덮어도 정신의 줏대는 바뀌지 않는다. 얼굴은 저마다 지닌 정신세계의 조감도(鳥瞰圖) 같아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눈빛에서 묻어난다. 인물 사진을 즐겨 보는 까닭도 그래서다. 그렇다고 내게 작품을 보는 안목이 있다는 건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앎이 얕아서 깊게 보지 못하는 나의 눈은 작가의 의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대신 내 눈이 쫓는 건 사진에 담긴 얼굴의 흔적이다. 눈빛과 표정과 주름에 드리워진 생각의 발자취이다. 얼굴에는
신정부의 외교안보분야 공약의 캐치프레이즈인 ‘당당한 외교, 튼튼한 안보’는 표면상 보기에는 괜찮다. 주권국가로서의 자주성을 당당하게 내세우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결의라면 높은 점수를 주어도 괜찮을 것이다. 다만 그 내용에 있어 진정 실질을 추구하고 바른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재고해 봐야 할 것 같다. 과거 2008년 MB정부가 들어서던 상황이 재현될까 두려움이 앞선다. 선 비핵화 후 관계회복, 한미동맹과 확장억제 강화, 선제타격 등 주장 내용이 거의 MB정부의 주장 내용과 일치하고 더욱이 이 일의 담당 주역도 과거 MB정부의 인사들이다 보니, 금강산관광 폐쇄, 천안함, 연평도 사건 등이 떠 오른다. 당시 상황과는 크게 변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감안할 때 더욱 신경이 쓰임은 나만의 걱정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금년 들어 지속적인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준비하고 있는 제7차 핵실험, 그리고 그들의 언동 내용의 진의를 바로 해석하면 길이 보일 것이다. 2018년의 꿈같은 시절, 북한으로서는 숙원이었던 안보 불안에서 해방되고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대통령에게 자신들 주민…
-통혁당 사건 이후의 기세춘 지난 5월 6일 88세로 세상을 떠난 묵점(墨店) 기세춘(奇世春)에게 1968년 ‘통혁당 사건’은 그 인생에 한 획을 긋는다. 신영복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박성준은 15년형 그리고 기세춘은 기소유예가 되었다. 하지만 수사명단에 올라 빨간 딱지가 붙은지라 구직(求職)은 막혔고 대전에서 기계 설계로 생활을 해결하면서 동양철학 연구에 생애를 바친다. 훗날 묵자(墨子) 연구는 기세춘의 명성을 만들어 냈다. 그는 퇴계 이황과 조선 성리학의 최고 논쟁인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을 벌였던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의 15대손으로 잘 알려졌고 아마도 그 내력은 기세춘의 평생 자부심이 되었으리라 짐작해보게 된다. 그가 한학과 동양사상에 몰두하게 된 까닭도 이런 연유가 강하게 작용했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의 큰할아버지 기삼연은 구한말 의병대장이었으니 이런 가족사의 흐름 속에서 기세춘이 무얼 생각하며 살았는지 알 만하다. 기세춘이 통혁당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던 것은 1963년 그가 『동학혁명연구회』를 만들어 이끌고 있을 때였다. 당시 이 연구회의 학술위원장을 맡은 이가 신영복이었으니 수사당국이 그대로 지나칠 리 만무했다. 둘의 인연은 신영복의
동물에 대한 연민은 우리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인데, 세상의 온갖 관습과 암시의 힘에 의해 우리는 동물의 고통과 죽음에 대해 냉혹하고 무자비해지고 있다. 동물에 대한 연민은 선량한 인격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서, 동물에게 잔인한 자는 결코 선량한 인간이 아니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 신을 두려워하라. 그리고 동물을 학대하지 말라. 기꺼이 일해 주는 동안에는 그들을 부리고, 지치면 쉬게 해 주며, 말 못하는 그들에게 충분히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어라. (마호메트) 육식은 동물을 죽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동물을 죽이는 것은 행복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다. 인간들이여, 육식을 삼가라. (바라문 법전) 인간이 동물들보다 위에 서는 까닭은, 우리가 동물을 냉혹하게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동물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부처) 아이들로 하여금 벌레를 죽이지 못하게 하라. 무서운 살인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 동물에 대한 연민의 정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은, 사냥과 육식을 끊음으로써 잃는 만족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인간이 신의 형상을 닮았다는 말은 신을 대신하여 모든 생명들을 잘 보살피라는 말이다.
"한 후보자는 즉각 자진 사퇴하길 바란다" 민주당 지도부의 말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부적격 인사라는 뜻이다. 총리 후보자는 국회의 “인준” 대상이어서, 국회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윤석열 당선인이 총리로 임명할 수 없는데, 민주당이 국회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낙마시킬 수 있다. 만일 한덕수 후보자가 낙마하게 되면, 이론적으로 윤 당선인은 인사청문 보고서가 채택된 장관 후보자들도 장관으로 임명할 수 없다. 법적으로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장관을 임명해야 하는데, 제청할 총리가 공석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현직 총리인 김부겸 총리가 추경호 경제 부총리 임명 제청을 하고, 이렇게 임명된 추경호 부총리가 “공석”인 총리를 대신해 장관 임명 제청권을 행사하거나, 아니면 김부겸 총리가 윤석열 행정부 내각에 대한 임명 제청권을 행사하고 내려오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래저래 모양새가 이상할 수밖에 없다. 한덕수 총리 후보자를 낙마시키면 이렇듯 “이색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진짜” 한덕수 총리 후보자를 부적격 인물이라고 생각해서 낙마시킨다면, 국회의 다
큰 스승으로 모시는 어른들 가운데 세계적인 육종학자 한상기 박사(1933~ )가 계시다. 서울농대를 거쳐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박사를 하고 모교의 조교수가 되었을 때, 이 젊은 학자는 두 가지의 기회 앞에 섰다. 38세. 하나는 영국 캠브리지대학 식물육종학 연구소, 또 하나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국제열대농학연구소. 그는 이 순간 미국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떠올렸다. "...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훗날 나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일왕불퇴(一往不退:한번 가기로 했으면 결코 물러나지 않음)의 주사위를 아프리카 대륙 위에 던진다. 1970년대 아프리카는 내전, 자연재해, 전염병에, 매해 50만 명이 굶어죽는 슬픈 땅이었다. 역시 굶주림이 가장 크고 시급한 숙제였다. 설상가상, 주식인 '카사바'(cassava)의 고사현상이 전대륙에 걸쳐 벌어지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백이면 아흔 아홉은 캠브리지를 택할 것이다. 한박사의 사명은 23년간 단 하루의 결근도 없이 헌신적으로 지속되었다. 슈바이처가 활동했던 가봉의 랑바레
프랑스 고전음악의 대가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그는 어릴 적부터 바다를 좋아했다. 그래서일까. 바다를 선율에 담으려는 큰 야망을 품고 살았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어느 날 일본화가 호쿠사이의 '거대한 파도'를 봤다. 이때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드뷔시가 '바다(La Mer)'를 작곡하기 시작한 건 욘(Yonne). 아이러니하게도 바다와는 거리가 먼 육지였다. 이곳에 드뷔시가 첫발을 디딘 건 아내 릴리와 함께. 욘의 비쉔(Bichain) 마을 오두막집을 얻어 드뷔시는 대작 '바다'에 몰두했다. 이때 친구 뒤랑(Durand)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바다'를 작곡하고 있네. 만약 신의 가호가 있다면 일이 잘 진척될 걸세.” 해변의 3막은 이렇게 간절하게 부르고뉴 포도밭 비탈길에서 시작됐다. 드뷔시는 비쉔의 고요함과 자연에 반했다. 부르고뉴와 일드프랑스 접경지역인 비쉔. 이곳 들판에서 만난 선량한 마을사람들에게 드뷔시는 그만 매료됐다. 여름이면 이곳에 와 순진한 시골 사람들과 비쉔을 둘러싼 다양한 나무들을 바라봤다. '바다'의 작곡은 파리로 돌아 와 계속됐고 노르망디, 제리, 푸르빌로 이동하면서도 계속됐다. 완성된 건 3년 만인…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홀로 살고 있지만, 우리의 모든 사상과 감정은 인류에게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회의 지도자들이 미치는 영향은 말할 수 없이 크지만, 그러나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의 사상과 신념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경우는 없다. 누군가에게 일단 전해진 말은 모든 운동과 마찬가지로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 (아미엘) 인간의 가슴에서 나오는 좋은 말은 모범이 되는 좋은 행위와 마찬가지로 유익하다. (세네카) 자신이 전하는 모든 말과 사상은, 결국 선 또는 악을 행하는 능력으로 바뀌어 자신에게 다시 돌아온다. (류시 말로리) 간결하게 표현된 힘찬 사상은 인간생활의 개선에 크게 이바지한다. (키케로) 땅에 뿌려지는 씨앗이든 사람의 마음에 뿌려지는 언어의 씨앗이든, 씨앗을 뿌린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다. 인간은 모두 농부와 같아서, 깊이 생각하면 인간의 사명은 모름지기 생명을 가꾸고, 곳곳에 씨앗을 뿌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인류의 사명이며 그 사명은 신성한 것이다. 그리고 언어야 말로 그것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연장이다. 우리는 자칫하면, 언어가 동시에 파종이기도 하고 계몽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기 쉽
여성질환을 치료하다 보니 한의원에서 월경통을 호소하는 분들을 많이 만난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8년 전이었다. 선배의 한의원으로 문의전화가 왔었는데 부인과질환은 잘 보는 후배가 있다고 하며 나에게 보낸 모양이었다. 환한 인상의 씩씩한 분위기의 40대인 그녀는 모 대학병원에서 자궁에 근종이 3개 있다고 진단받았다. 월경통 외에는 자궁근종으로 인한 불편감이 없어서 통증을 잘 조절하며 폐경이 될 때까지 기다리면 될 터였다. 문제는 3개월 전부터 월경통이 무척 심했고 강력한 진통제로도 조절이 되지 않아서였다. 그러자 그 병원에서는 자궁절제술을 권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수술을 한다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싫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치료법을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하였고 한방치료를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나와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매주 2회씩 내원하여 침, 왕뜸 등의 치료와 한약치료를 지속하였다. 통증은 첫 달부터 변화를 보였는데 치료를 시작하고 세 번째 달에는 견딜만한 수준으로 변하였다. 무엇보다도 처음내원 시 소화불량과 피로와 어지럼증 그리고 5년 전부터 그녀가 매철마다 고생하던 비염증상도 같이 호전되었다. 치료를 마친 후 그녀는 1년에 1, 2회씩 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