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국제 현실과 과제 오늘날 지구상에는 200여 개의 주권국가가 존재하며, 미국·독일·일본·영국·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 등 G7은 물론 중국·인도·러시아·브라질 같은 인구 대국까지 국제 질서 재편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글로벌 선도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에게 이는 동시에 중대한 기회이자 위협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으로 재출발한 대한민국은 반세기 만에 산업화·민주화·정보화·세계화를 압축적으로 달성하며 ‘한강의 기적’을 현실로 만들었다. 2009년에는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OECD DAC 가입)으로 전환한 유일한 국가가 되었고, 2021년에는 UNCTAD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격상되었다. K-음악·영화·드라마·음식·미용·IT·한국어 등으로 대표되는 K-컬처는 ‘15세기 세종, 18세기 영조·정조 시대 이후 최대의 문예부흥기’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세계적 영향력을 확장했다. 그러나 21세기 국제정세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 자국 우선주의의 확대로 그 어느 때보다 냉혹하다. 이는 ‘민족자존의 정당한 권리’가 강력한 국력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대응도,…
제86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이 이달 17일 육군사관학교에서 거행됐다. 순국선열의 날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19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기념일로 제정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가보훈부는 올해 기념식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는데, 이종찬 광복회장의 요청으로 육사 교정에서 처음 진행했다. 독립유공자 유족, 정부 인사, 육사 생도까지 800여 명이 기념식에 참석했다. 육사 교정에는 독립전쟁 영웅으로 불리는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함께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이 있다. 2023년 8월에 국방부와 육사가 이 흉상들을 이전하겠다고 했다가 찬반 의견이 대립하고,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었다는 비판이 크게 일었다. 긴 논란 끝에 2025년 5월에야 육사가 모든 흉상을 현 위치에 그대로 두기로 했으니, 이종찬 회장은 육사 교정에서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을 거행함으로써 독립군의 정신은 광복군으로 이어졌고, 대한민국 국군이 그 뜻을 계승하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내고자 했다. 우당(友堂) 이회영(1867~1932) 선생은 이종찬 광복회장의 조부다. 일제 침략으로 나라를 잃게 되자 우당 6형제는 온 가족이 만주로 망명
인터넷을 중심으로 언론매체 수는 그야말로 확장일로에 있다. 법적으로 등록되거나 허가되지 않은 혹은 그럴 필요가 없는 자칭 언론매체의 증가도 가파르다. 양적으로만 따지면 언론산업은 얼핏 유망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종사자나 전문가는 물론 시민도 언론산업의 열악함을 잘 안다. 주위 시선도 예전 같지 않다. 대학에서 저널리즘의 인기는 시들하다.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미디어 전공생은 해마다 줄고 있다. 관련 강의가 폐강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 많았던 대학언론도 쇠퇴의 길에 접어든 지 오래다. 언론을 제외하고도 전망 밝은 미디어 영역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선뜻 언론에 자신의 미래를 맡겨보라 청년에게 추천하기 어렵다. 그래서 청년이 자발적으로 만든 언론매체는 내게 언제나 응원의 대상이다. 숟가락 하나 올려본다. 작년 4월 창간한 '토끼풀', 최근 여기저기에서 많이 소개된 신문이다. 제호는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이라는 게임에 나오는 ‘토끼풀 신문사’에서 따왔단다. 서울 은평구 6개 중학교의 학생 32명이 만든다. 이들이 직접 기사를 쓰고 편집하며 발행한다. 중학생이 만드는 재기발랄한 학급신문 정도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인데도 나는 아직도 때때로 시험을 보는 꿈을 꾼다. 시간에 쫓겨 문제지를 다 풀지 못하거나, 백지의 답안지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꿈이다. 깨고 나면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얼마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고3 수험생들을 보며, 그 꿈이 다시 떠올랐다. 우리는 학교를 떠났지만, 여전히 각자의 삶에서 자기만의 문제지를 풀고 있는 수험생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었다. 어른이 되면 시험이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시험은 늘 삶의 다른 형식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점수나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삶이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어떤 지점을 넘어야만 다음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중요한 순간들 앞에서 흔들린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그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많은 선택을 복잡한 방식으로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예상과 전혀 다른 상황에 빠지게 되는 순간도 있다. 기대보다 실망을 안겨주었던 자리가 오히려 자신에게 필요한 기회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큰 기대를 품었던 일이 나와 맞지 않는 자리임을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았다. 가까스로 잡은 기회를
소사역 앞이 분주합니다. 성모병원 쪽으로 뚫린 굴은 삼 번 출구입니다. 장례식장도 가톨릭대학도 그쪽에 있습니다. 병원까지 가는 길은 재개발 공사가 한창입니다. 집은 뜯기고 땅은 파였습니다. 재개발 공사로부터 자유로운 건물은 성당뿐입니다. 그래설까요. 그쪽을 향해 굴을 나서는 이들의 얼굴에는 늦가을이 만연합니다. 아니, 설익은 초겨울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까요. 일 번 출구 역시 붐비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소사지구대 방향인데, 길을 건너면 오십 층 아파트가 즐비합니다. 나이 지긋한 동네를 헐어내고 새롭게 지은 젊은 아파트 단지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걸 도시재생이라고 부릅니다. 주거재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정확한 뜻은 잘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당신과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새것이 대접받습니다. 번뜩이고 아찔한 신상일수록 귀한 몸값을 받습니다. 집도 옷도 차도 신상이라야 값을 쳐줍니다. 패션도 기술도 취향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 묵을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게 나와 당신이 사는 세상입니다. 신상이 아닌데도 대접받는 건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뿐입니다. 골동품이거나 보석이거나 주식이거나 땅문서가 아니고선 내밀기조차 부끄럽습니다.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나섰으
꼬꼬마 한의사 시절, 내가 인턴을 했던 병원은 중풍 전문병원이었다. 급성기 뇌경색·뇌출혈 환자들이 끊임없이 입원했고, 인턴들의 호출기는 하루에도 수십 번 울려댔다. 어느 날 점심 두어 숟갈을 뜨려던 순간, 호출기가 울렸다. ‘왼쪽 대뇌의 절반 이상이 손상된 중대뇌동맥 뇌경색 환자가 L-tube를 또 뽑았다는 연락’이었다. 전날에도 두 번 뽑은 분이었다. 병실로 올라가 튜브를 삽입하려 하자, 환자는 마비되지 않은 손으로 튜브를 잡아채 바닥에 내던졌다. 다시 넣으면 또 빼고, 실어증으로 인해 6인실 병동 전체가 울릴 만큼 우우우— 하고 울부짖는 소리만 들렸다. 다섯 번, 여섯 번. 잠시 생각이 스쳤다. “이렇게까지 거부하는데 꼭 넣어야 할까?” 그러나 당시 나는 열정적인 인턴이었다. 병실이 쩌렁쩌렁 울릴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 너무 힘들지만, 치료하면 좋아질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걸 끼어야 좋아질 수 있어요. 최선을 다해서 살 수 있을 만큼은 살아봐야 하잖아요.....”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한지 5분이 지났을까 그의 눈빛이 흔들리며, 몸부림이 조금 가라앉았다. 나는 다시 L-tube를 삽입했고 그는 영양섭취가 가능해졌다. 25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확신은…
시장은 여전히 가라앉아 있고 관객 동원력은 떨어져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른바 종(種) 다양성은 높게 나타나고 있다. 다양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얘기이다. 물론 계절적인 요인도 무시하지는 못한다. 연말이고, 해를 넘기기 전에 ‘묵은’ 영화들을 밀어내려는 상황이기도 하다. 특히 배급을 지원받은 독립영화의 경우 약속된 규정에 따라 해를 넘기기 어려울 작품도 꽤 있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상당히 수작인 작품들, 다양한 국적의 영화들이 줄을 잇는다. 특히 눈에 띄는 외화들이 많다. 예컨대 대만 영화 '왼손잡이 소녀'는 미국 션 베이커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이다. 대만 영화가 요즘 뜨고 있다. 중국 제작의 블록버스터 '난징사진관'은 중국에서는 8452만 명이라는 믿을 수 없는 관객 수가 나오고 있는 작품이다. 30억 위안, 6160억 원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3만 명 선을 가까스로 밀어붙이고 있다. 중국식 ‘국뽕’이라는 평가, 혹은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고 편견이나 오해에 기반한 혐중 정서의 영향을 받는 탓으로도 보인다. 그럼에도 이 작품 역시 꽤 괜찮은 수작으로 평가된다. 1937년 난징 대학살의 비극을 올바르고, 무엇보다 품위 있게 전달하고 있다.
낙산 공원 가을 단풍이 한창이던 10월의 마지막 날, 한양도성길 성곽 아래 자리한 우리 대학에서는 해외 각국에서 온 유학생들을 위한 작은 축제가 펼쳐졌다. 낯설고도 재미난 한국문화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그동안 갈고 닦은 한국어 실력을 기반으로 한바탕 경연을 펼치는 ‘외국인 한국어 뽐내기 대회’가 열린 것이다. 400여 명의 참가자들이 학교 대강당을 가득 채운 채 하루 종일 웃음꽃을 피웠다. 개인 참가자들이 각각 일정한 주제로 발표를 선보이는 한국어 말하기 대회는 여타 기관에서도 종종 개최되는 편이지만, 여러 명이 하나의 팀을 이루어 주제를 선정하고 대본을 쓰고 외워 연습한 후 팀별로 무대에 올라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펼치는 이런 형식의 말하기 대회는 흔치 않아 자부심을 느끼며 이어가는 우리 기관의 특별 행사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대회는 기획 단계부터 몇 달이 소요되는 데다, 준비 과정 내내 학생들도, 교사들도, 행정팀도 하나같이 품이 많이 들고, 대회 당일에도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너무 많아 다양한 층위의 협력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매년 꾸준히 대회를 운영해 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어느덧 13회차를 맞이한 이번 대회에는 해외 자매대
‘산은 강을 낳고, 강은 숲을 가꾼다.’ 산과 강, 강과 숲. 거기에 공기가 있어 내가 산소를 호흡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강 가운데의 섬 같은 산을 하염 없이 바라보았다. 모든 걸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인간의 체온이 종교라는 어느 시인의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예고 없이 찾아온 친구 차를 타고 진안고원 ‘용담호’에서 나는 한동안 언어를 잊고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사는지를 모르면 그날그날 아무렇게나 살게 된다는 생각과 함께. 1971년 일이다. 대전고등학교 김영덕 교감선생님으로부터 그의 저서 '나무도 보고 숲도 보고'라는 수필집을 받았다. 책을 호롱불 심지 돋워가며 읽었다. 곧바로 감상문을 써 보내드리며 나도 수필을 공부하며 쓰고 있다고 했다. 그분은 써 논 글을 한 편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농사일로 고생하시던 어머니가 좌골신경통으로 허리 다리의 통증을 방바닥을 치며 호소하는데, 소낙비로 인한 빗물은 온 마당을 넘실대고 있는 안타까움을 작품화한 수필을 우편으로 보냈다. 선생님은 나를 초대하였고 나는 처음으로 대전고등학교를 찾아가 인사드리고 하룻밤을 보낸 뒤 돌아왔다. 수필 공부로 맺은 첫 인연이요 은인이었다. 그분의 책을 읽고 보이지 않는 나무
어느새 11월이다. 달력을 넘기다 보면 한 해가 참 빠르게 흘러갔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 공기는 차가워지고, 해는 짧아졌다. 계절이 깊어질수록 하루하루의 끝엔 잔잔한 정적이 내려앉고 ‘나는 올해를 잘 살아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찾아오는 요즘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올해의 끝자락에서, 이미 지나가 버린 나날들을 천천히 돌아본다. 올해는 유난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익숙했던 것들을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했고, 예상치 못한 만남과 감격스러운 경험도 했다. 그 속에서 기쁨도, 후회, 감동 등의 감정도 함께 남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니 어느새 11월이다. 시간이 점점 빨리 간다는 지겹도록 진부한 말을 공감하며 뱉게 될 줄이야. 물론 지치기도 했지만, 마음 한켠이 따뜻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돌아본다는 것은 단순히 지난 일을 되새기는 게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변했는지, 무엇을 배우고 놓쳤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사람들은 종종 미래를 준비하느라 바쁘게 달리지만, 때로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볼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 알게 된다. 올해의 나는 작년의 나보다 조금 더 말랑해졌고, 어떤 일에는 더 마음을 열게 되었다. 그것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