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민에게 버스를 기다리던 시간은 언제나 무자비하게 길다. 몇 분 남지 않았다는 표시가 전광판에 뜨지만, 체감 시간은 늘 그보다 길었다. 기다림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스마트폰에 몰두한다. 하지만 가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주위를 바라볼 때가 있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날씨의 모습,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그냥 세상의 모습.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나는 오히려 멀리 떠나 있던 마음을 불러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우리는 흔히 기다림을 불필요한 시간, 낭비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하고, 다음 것을 하기 전의 공백. 빨리 결과를 보고 싶고, 계획이 당장 이루어지길 바라며 조급해한다. 그러나 기다림의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주변을 살피며, 더 깊은 이해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이 단순한 사실이 점점 더 크게 다가온다. 기다림 속에서 작은 변화와 새로운 생각이 싹트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되면서, 그 시간은 결코 허비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병원에서 번호표를 들고 차례를 기다릴 때, 전철역에서 출발을 기다릴 때, 혹은 커피가 다 내려오기를 기다릴 때. 이 시간들은 모두 사소하고 불필요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
답은 없습니다. 옳음도 그름도 그러합니다. 생각 따라 다르고, 처지 따라 바뀝니다. 누군가에게는 절반이나 마셔버린 술병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절반이나 남은 술병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술병이 ‘벌써’가 되기도 하고 ‘아직’이 되기도 합니다. 말 역시 그러합니다. 뜻을 전하기 위한 게 말이지만, 되려 뜻을 왜곡하는 게 말이기도 합니다. 말이 말을 뒤집고 말이 말을 감춥니다. 뒤집고 감춘 건 말인데, 뒤집히고 멀어지는 건 사람입니다. 말을 아끼고 가려 할 까닭이 거기 있습니다. 사랑도 이별도 출발점은 말입니다. 전쟁과 평화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선전포고든 평화협정이든 말 아닌 게 없습니다. 말이 말을 낳고, 말이 말을 버립니다. 낳은 말도 버린 말도 사람의 것인데, 낳음과 버림의 끝에는 사람은 없고 말만 살아 날뜁니다. 날뛰는 말 뒤로 사람이 숨으면, 말은 흉기가 되고 세상은 난장판이 됩니다. 한 번 뱉은 말은 끝내 담을 수 없습니다. 아낄수록 좋은 게 말입니다. 진심은 말이기보다 침묵에 가깝습니다. 감정에도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사랑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끝내 붙잡아야 할 인연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놓아야 할 짐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사
2025년 1월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CES 2025)’가 개최되었다. 이 행사에서 기조연설을 맡은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피지컬 AI(Physical AI) 개발 플랫폼인 ‘코스모스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을 소개하면서 로봇 산업의 폭발적 발전을 예고했다. 또한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에 따르면 올 초에 발간한 보고서에서 10년 후 로봇을 비롯한 휴머노이드(humanoid) 시장 규모는 60조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2023년 글로벌 자동차 산업 규모는 3조 달러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GDP는 2024년 기준으로 각각 26.9조 달러, 19.3조 달러였다. 만약 모건스탠리의 예측이 빗나가지 않는다면 2035년에는 로봇과 휴머노이드 산업이 현재 자동차 시장의 20배 규모로 성장하며, 미국과 중국의 2024년도 GDP를 합친 것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규모가 된다. 로봇은 활동 분야, 기능 및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하는데, 대체로 산업용 로봇, 서비스 로봇, 특수 로봇 등으로 나눈다. 산업용 로봇은 자동차 조립라인이나 전자제품 생산라인과 같이 대량생산에 적절한 기계 팔…
얼마 전 있었던 광복 80년 전야제와 기념식을 보면서 스피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무대에 오른 많은 사람의 진심을 담은 스피치에 청중은 공감과 기쁨으로 환호했다. 이렇듯 AI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된 오늘날, ‘말'의 가치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깊은 울림을 주는 스피치는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설문조사에서 스피치능력은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능력으로 취업, 승진 등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영학자였던 피터 드러커는‘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자기 표현력이며, 현대 경영이나 관리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좌우된다.’라고 했다. 그런 만큼 스피치능력을 잘 가꾸는 것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 중요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청중 앞에서 스피치한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손에 땀이 나고, 목소리가 떨리며, 머릿속이 하얘지는 경험을 누구나 겪게 된다. 스피치는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스피치는 혼잣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청중의 눈을 마주하며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해야 하니 긴장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라이즈 사업 시행이 본격화되었다. ‘라이즈(RISE)’는 2023년 교육부에 의해 발표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를 의미한다. 대학 재정 지원을 위한 예산 집행 권한을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함으로써 지역 특성과 발전 전략에 기반해 대학혁신을 도모하도록 하는 새로운 체계이다. 저출생으로 인한 학령인구 및 노동인구 감소, 과학기술 발달로 인한 고등교육 및 산업구조 혁신 요구 등 지역과 대학이 당면한 공동위기를 극복하고 동반성장을 도모하도록 하는 대전환 계획이다. 지난 2년간 시범운영을 거쳐 기본계획과 대표 과제 및 추진 전략이 마련되었으며, 전국 각 시도별 행정부서 정비가 완료되었다. 지난해 12월에는 지역별 라이즈 사업 추진을 위한 2025년 국고 예산 총 2조 10억 원이 최종 확정되었다. 지방비 편성까지 포함하면 최종 사업비 규모는 2조 4천억 원에 달한다. 서울시도 지난 5월 라이즈 사업 추진 대학으로 35개 대학을 선정 발표하였고, 각 대학은 현재 지역-대학 간 동반성장을 위한 기반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라이즈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는 여러 측면에서 면밀히 다루어져야 하겠지만, 결국 지역 내 대학과 기업 간의 산학협력, 인재
일단 시작은 좋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14일 윤제균 감독 등 영화인들과의 간담회를 가진 것은 시장에 긍정적 시그널을 줬다. 최 장관은 한국 영화계의 생태계 복원을 약속했으며 제작을 지원하고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구체적 방안이 마련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최소한 6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영화계 아젠다를 재설정하고 지원 투자 금액의 규모를 설정하는데 있어서의 당위성, 필요성 등이 면밀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논쟁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장관이라는 정무직 인사가 영화계가 현재 겪고 있는 문제를 잘 알고 있으며 이에 대해 고쳐 나갈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애초 장관이 임명될 당시 영화계 내 일부에서는 그를 가리켜 플랫폼 사업자 출신이라며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까지 했다. 현재는 그런 볼멘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영화계 거버넌스의 최고 책임자와 영화인들이 일치된 행동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신호이다. 좋은 일이다. 기획개발비라는 게 있다. 영화 아이템이 시나리오로 나오기까지, 캐스팅과 프리(pre) 프로덕션이 이루어지기까지 돈이 들어간다. 밥도 먹어야…
1970년대 후반 미국 영화 스타워즈에 로봇 R2-D2, C-3PO가 등장하여 인기가 많았다. 그 후 휴머노이드 로봇은 공상과학 영화에서 단골 주제로 다룰 만큼 우리에게 친숙해졌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미국이 연구개발을 주도해왔다. 미국의 간판 로봇 기업인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구글, 소프트뱅크를 거쳐 현대차그룹의 자회사가 되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4족보행 로봇 스팟 등을 개발하였으며 연구개발 능력이 강점이다. 테슬라는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올해 5,000대 생산할 예정이었으나 차질을 빚고 있다. 아마존은 배달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 중이며, 오픈AI와 메타도 휴머노이드 로봇산업에 참여했다. 스타트업 피규어 AI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연간 최대 12,000대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구축했다. 엔비디아 젠슨 황은 “인공지능(AI)과 로봇공학이 엔비디아의 성장 기회”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골드만삭스는 2035년 휴머노이드 로봇의 세계시장 규모를 380억 달러로 전망했다.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업체들의 기술 경쟁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중국 표준화 2035’ 계획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을 9대 미래산업으로 지정했다. 중
중세 유럽에서 노동은 단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신과의 관계를 드러내는 행위였다. ‘기도하라, 일하라’(ora et labora). 베네딕트 수도회의 이 모토는 중세 기독교 노동윤리의 핵심을 보여준다. 수도사들은 하루의 절반을 노동에 바쳤다. 그들의 일은 세속적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훈련과 공동체 봉사의 한 방식이었다. 노동은 죄 많은 육체를 단련하고, 겸손을 기르는 수련이었다. 반면, 수도원 밖 세속 세계의 노동은 또 다른 질서를 형성했다. 중세 도시의 장인들은 길드(guild)라는 조직을 통해 노동을 사회적 계약으로 만들어냈다. 수련생 → 도제 → 장인으로 이어지는 위계적 구조 속에서 기술은 세습되었고, 노동은 곧 정체성과 계급의 표식이 되었다. 길드는 기술 보호와 가격 통제뿐 아니라, 공동체 윤리를 보장하는 자치적 조직이었다. 이들은 도시민의 자부심이었고, 새로운 부르주아 계층의 씨앗이기도 했다. 수도원의 노동이 신과의 관계를 위한 내면적 수련이라면, 길드의 노동은 시장과의 계약을 위한 외면적 실천이었다. 둘 다 노동을 숭고한 행위로 보았지만, 목표와 방식은 달랐다. 하나는 은둔을, 다른 하나는 도시적 삶을 지향했다. 중세
‘배워야 산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을 듣게 되고, 공부와 독서라는 단어가 귀에 익고 눈에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이다. 그래 공부해야지, 부지런히 책 읽고 ‘문학 공부를 해보자.’ 라고 생각했다. 그 뒤 나의 시대적 사고(思考)와 진실의 에너지는 시에 있어서는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의 푸시킨의 시와 선조로서의 양사언의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라고 할 수 있다. 중학교 다니면서 방을 얻어 자취할 때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 품을 떠나 학교 다녀와 저녁밥을 지으려고 부엌에서 나무에 불을 지필 때,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순간 푸시킨의 시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시행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리며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이때의 감성이 일생을 살아오면서 고비고비 굽이굽이마다 어머니의 가슴 체온 같이 슬픔을 다독여주었다. 내 곁에는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고향 친구가 있다. 그는 온화한 성격으로서 따지지 않고 신앙적인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친구는 J 대학에 재직하면서 일찍부터 산행을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나는 그를 따라 합천 해인사와 지리산을 등반하는데 동행한다는 것이…
기후변화는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재앙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기후재앙의 현실과 그에 따른 책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들에 의한 현실 부정이 격렬해질 수 있다. 환경 이슈에 관한 가짜뉴스는 이미 많지만 더욱 많아질 것이다. 파리 기후협약을 탈퇴한 미국 대통령부터 언론사들을 높은 금액의 소송으로 위협하는데 거침이 없다. 앞으로 법원이 환경 이슈에 관한 뉴스의 진실과 허위를 판별해 시시비비를 가려 달라고 요청받는 일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법원에서의 분쟁은 사인과 사인의 분쟁의 형태를 취하거나 공권력과 사인 사이의 대립의 형태를 취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환경 문제에 관한 뉴스를 둘러싼 분쟁은 사실 다수의 공익과 또 다른 다수의 공익이 충돌하는 성격을 갖는다. 대안적 사실들 중 어느 것이 진실로 선택되어 선언되느냐에 따라 당사자의 승패뿐만 아니라 다수의 이해득실이 변화할 수 있다. 개별 노동자와 개별 사용자가 부딪히는 노동 행정 분쟁도 단순히 사인 간 분쟁이 아니라 노동계와 경영계의 분쟁이 배후에 있는 것처럼, 환경 이슈에 관한 법적 분쟁 역시 단순히 개인 간의 개별적 분쟁 같이 보이고 그렇게 취급되지만 그 비하인드에는 다수의 이익과 또 다른 다수의 이익의 충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