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공부하러 떠난 아들이 어느 날 시골 아버지를 찾아왔다. 돈이 떨어진 탓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공부는 안 하고 팽팽 놀기만 한 것을 담박에 알아차렸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풀베기를 해야 하니 갈퀴를 가져오렴” 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일 시킬 것이 뻔해 “갈퀴? 그게 뭐지요? 제가 공부에 바빠 생각이 나질 않네요” 하고는 마당을 가로질러 방으로 들어가 퍼 잘 꾀를 부렸다. 그러다 마당에 놓인 갈퀴를 잘못 밟아 이마를 쿵하고 짓쪘다. “아니, 누가 여기다 갈퀴를 놓아 둔거야?”하고 씩씩거렸으나 이미 피멍이 커다랗게 생긴 뒤였다. 이번에는 갈까마귀 이야기다. 독수리가 높다란 산 위에서 쏜살같이 내려와 새끼 양 한 마리를 나꿔채는 걸 본 갈까마귀가 자기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여겼다. 기고만장하여 들판의 숫양을 내리 덮쳤으나 발톱이 양털에 얽혀 박힌 채 그만 파닥거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목자가 이걸 보고 갈까마귀를 사로잡아 날개를 꺾고는 집으로 가져가 아이들에게 놀잇감으로 주었다. 아이들은 이 새가 무슨 새냐고 묻자 목자가 답했다. “갈까마귀가 분명한데, 독수리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야.” 톨스토이와 이솝이 각기 전해준 이야기들이다. 농사꾼 아들이 도
본보에 게재된 박재동 화백의 만평에 대한 일부 언론들의 무차별 비난이 도를 넘고 있다. 특히 만평에 대한 객관적인 견해를 훨씬 넘어서는 작가에 대한 인신공격성 언급들은 언론이 범해서는 안 될 고약한 일탈이다. 이런 행태들은 ‘표현의 자유’는 물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통제하려는 비민주적인 인식의 잔재를 엿보게 해 씁쓸하다. 누구보다도 기본권적 자유를 존중해야 할 언론들의 이런 보도 태도는 반드시 개선돼야 할 구태다. 중앙일간지를 포함한 다수의 언론이 지난 23일부터 본보에 연재되고 있는 박재동 화백의 만평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의 일부 내용을 걸고넘어지고 있다. 시비가 걸린 만평은 지난 26일자 본보 1면에 게재된, 최근 대립하고 있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모습을 풍자한 그림이다. 만평은 지난 국감에서 윤 총장이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한 발언을 인용하고 있다. 만평 속에서 윤 총장이 “난 당신 부하가 아니야”라고 말하자, 팔짱을 끼고 있는 추 장관이 그 앞에서 “소원대로”라고 말하는 모습을 담았다. 윤 총장의 모습은 목이 잘려있는 상태로 그려졌다. 만평에는 “윤석열 총장과 추미애 장관의 대립이 한고비를 넘었
추록자 불견산(追鹿者不見山)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숲속에 까마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까마귀는 몹시 목이 말랐다. 그는 물을 찾아 나섰다. 오랜 가뭄으로 마실 물이 보이지 않았다. 까마귀가 타는 목마름으로 사방구석을 헤매고 다니는데, 마침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를 발견했다. 마침 까마귀의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주둥이가 긴 항아리 하나가 무너진 담장 아래 비스듬히 누워 있는 게 보였다. 까마귀는 얼른 항아리 쪽으로 날아갔다. 그 속에 물이 있는 것을 알았다. 까마귀는 항아리 주둥이에 대가리를 집어넣었다. 그러나 항아리 속의 물은 그의 주둥이가 닿기엔 너무 멀었다. 까마귀는 양발을 버틴 채 모가지를 항아리 주둥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래도 물은 마실 수가 없었다. 까마귀는 온몸을 밀어 넣으며 버둥거렸다. 조금만 더, 조금 더…. 마침내 까마귀 주둥이가 그렇게 바라던 항아리 안 물에 닿았다. 그는 허겁지겁 물을 마셔댔다. 가까스로 물을 마신 까마귀가 이제 항아리 속에 들어간 몸뚱이를 빼내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항아리 주둥이가 너무 좁아서 까마귀는 몸을 빼낼 수가 없었다. 그는 날개를 퍼덕거
지난 11월 23일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이 있는지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지금도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백주대낮에 북한의 포탄이 면사무소와 주민 가옥 근방에 떨어져 폭발하던 장면을 방송을 통해 보면서 연출 장면이 아닌 실제 현실이라는 걸 알고서 무척 당황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였다. 연평도 포격도발은 1953년 7월 휴전협정 체결이후 북한이 무력으로 대한민국 영토에 공개적으로 포사격을 한 첫 사례로 그동안 빈번하게 있었던 비무장지대나 서해 해상분계선 일대 지역에서 발생한 도발과는 의미가 다르다. 당시 우리 군은 북한의 기습적인 도발에 군장병과 민간인 사상자와 주택 파괴 등 피해를 보았지만, 북한의 포격도발에 원점타격식으로 단호하게 대응하여 북한군에게 심각한 피해를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0년전 남북관계는 이렇듯 남과 북이 포탄을 주고 받는 상황이었다. 안타깝게도 10년이 지난 지금의 남북관계도 그때와 비교해서 본질적인 변화가 없어 보인다. 북한은 탈북민의 대북전단 살포를 계기로 강하게 반발하면서 대남관계를 대적관계로 전환하였다. 남북 통신선을 차단하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공개리에 폭파하였으며, 대남군사행동계획을 시행에 옮기려다가 보류하
경기아트센터 소공연장에서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을 보면서 그 소감을 적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연극은 자주 접하지 못한 장르이고, 그 깊이를 알지 못하는 바인데 연극 한 편을 보고서 그 느낌을 적어도 되는가 고민했다. 제목은 저물도록 너, 어디 있었니? 사랑하는 나의 아이야 너 지금 어느 곳에 있느냐?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11월19일부터 29일까지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휴식 없이 75분간 이어간다. 마른 나뭇가지와 고공시위 망루, 그리고 거친 거푸집 바닥이다. 거푸집이란 철근을 넣고 시멘트와 모래와 자갈로 벽채를 세우기 위한 나무판이다. 어제까지의 관행이 오늘 범죄가 된다. 섬뜩한 기시감. 기시감은 처음 접하는 단어이므로 사전을 찾아보았다. 기시감(旣視感) :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 상황이나 장면이 언제, 어디에선가 이미 경험한 것 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일. 데자뷰(deja vu)는 최초의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본 적이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이다. 무대에서는 현재와 1930년대, 1980년대, 그리고 현재의 어떤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겹친다. 시공을 초월한 두 배우의 독백이 자연스러운 대화로 이어진다. 가
집값 상승과 공시가격 반영비율 상향이 겹치면서 급격히 오른 종합부동산세(종부세)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국세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종부세 대상은 74만4천 명으로 작년보다 25.0%(14만9천 명)나 늘어났다. 납부세액도 작년보다 27.5%(9천216억 원)나 증가한 4조2천687억 원이나 된다. 종부세 제도의 취지는 살리되 충격을 완화할 제도보완책은 검토해야 한다. 현실성 있는 섬세한 규정으로 정부의 신뢰도를 높여야 할 것이다. 부과된 종부세액이 가장 많은 곳은 역시 서울로 2조6천107억 원이다. 주택분만 작년 8천297억 원에서 올해 1조1천868억 원으로 43% 급증했다. 다음으로 주택분 종부세 납부대상자가 많은 곳은 경기도다. 14만7천 명에게 2천606억 원이 고지됐다. 작년보다 대상자는 25.6%, 세액은 38.8%가 올랐다. 일반적으로 종부세는 다주택자를 겨냥한 일종의 ‘부유세’로 인식되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1주택자이면서 종부세를 내는 비중이 올해 서울에서만 38.3%에 이른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시중의 충격은 상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는 ‘종부세 폭탄이 웬 말’, ‘나라에 월세 내라는 거냐’, ‘세
4년차 중반을 넘어서는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문제로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다. 20여차례 정책을 쏟아냈지만 아직까지는 성적을 못내고 있다. 누르면 두더지처럼 튀어오르고 최근에는 증세 역풍까지 불고 있다. 그런데 이런와중에 또 현 정부로서는 별로 달갑지 않은 얘기가 언론에 불거졌다. 정부가 최근 전.현직 고위공직자 재산등록을 공개했는데 ‘청와대 다주택자’ 논란을 일으켰던 김조원 전 민정수석이 지난 8월 퇴직 시점까지도 집을 처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해말 수도권 다주택 참모들에게 6개월 안에 집을 처분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것이 제대로 실천되지 않자 노영민 실장 등 청와대 고위 비서관이 일괄사의를 표명하는 사태까지 있었다. 세금 폭탄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부동산 정책의 약발이 먹힐지 좀 지켜볼 단계가 아닌가 생각이 드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개인 사정이야 있겠지만 김조원 전 수석을 바라보는 국민이나 부동산 시장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문재인 정부가 나름대로 부동산 정책을 잇따라 내놓으며 시장을 안정화시키려 한 열정이나 진정성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측근이나 참모들이 대통령의 생각과 다른 길을 걷는다면 사정
◇소호 김천씨를 지우려했던 사마천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소호 김천씨를 지우기 위해 여러 장치들을 마련했다. 잘 알려진 소호 김천씨라는 이름 대신 누구인지 잘 모르는 현효(玄囂)라는 이름을 쓴 것도 소호를 지우기 위한 장치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사마천은 소호 자체를 지울 수는 없었다. 소호는 황제(黃帝)의 큰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황제의 첫 부인은 서릉씨(西陵氏)의 딸 누조(嫘祖)였는데, 이에 대해 《사기》 〈오제본기〉는 이렇게 썼다. “누조는 황제의 정비(正妃)가 되어 두 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의 후손들은 모두가 천하를 얻었다. 그 첫째가 현효(玄囂)인데, 이 이가 청양(靑陽)이다(《사기》 〈오제본기〉)” 이 현효가 바로 김수로왕과 김유신의 조상이라는 소호 김천씨다. 사마천은 잘 알려진 소호라는 이름 대신 현효, 청양 등 알려지지 않은 이름들을 쓰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청양은 강수(江水)로 내려가 살았다. 그 둘째가 창의(昌意)인데, 약수(若水)로 내려가 살았다.” 황제의 큰 아들인 청양, 곧 소호 김천씨는 강수에 살았고, 둘째 아들인 창의는 약수에 살았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고대의 역사강역을 크게 확장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강 이름들도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