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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에게 길을 묻다<8>-고은 시인

대담 : 문학평론가 고영직

 

-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 뵙기 전에 연말에 출간한 시집 『부끄러움 가득』을 읽었는데, 예전 작품보다 편안해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목도 소박하고, 해설도 없고, 시어도 소박해진 것 같습니다.
▲ (웃음) 그동안의 시집 출판 관행으로 보면 독자들이 좀 불편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 어느 인터뷰에서 ‘이번 시집이 손에 꼭 맞는 장갑이 아니라 벙어리 장갑이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봤습니다. 이번 시집에는 ‘평화’를 갈망하는 시들이 많이 수록된 것 같습니다. 「평화1」이라는 시에서 “문학이 소재 없는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한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난해 북핵 실험 이후 우리 한반도의 시간은 평화가 불투명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평화는 무엇인지요.
▲ 우리가 사는 곳에 평화가 필요하죠. 우리보다 가혹한 이라크도 있고, 레바논과 팔레스타인도 있습니다. 아직도 편히 잠들 수 없는 보스니아와 아프리카에도 평화는 꼭 필요합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한다면 우리는 훨씬 평화스러운 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각의 나라에서 말하는 평화의 의미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평화와 다른 조건일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평화라는 의미를 현실에 정착시키며 살아야 하는데 현실은 늘 그렇지 못해 불안하죠. 평화를 너무 많이 이야기하다보니 오히려 그 의미가 낡아버린 것 같습니다. 평화와 반대되는 현실이 눈앞에 있습니다. 나는 2000년 가을 유엔에서 「평화의 노래」라는 제목의 시를 낭송하고 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론 그 의미가 다소 다를 수 있겠지만 평화는 모든 이들이 원하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 「나의 유언」이라는 시에서 “호메로스의 때가 가고 / 헤로도토스의 때가 오리라”라고 썼습니다. 전쟁 영웅을 노래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보다는 농업과 신화를 예찬한 헤로도토스의 평화 지향이 더 좋다는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6.25 전쟁 때 피신했던 군산 선유도에 선생님과 같이 간 기억이 납니다. 평화에 대한 선생님의 간절한 염원을 그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평화는 번역될 수 없는 시와 같은 것입니다. 평화는 절대로 보편적인 가치가 아니라 어떤 고장과 어떤 마을의 평화를 수반하는 평화, 그것이 진정한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평화가 이라크의 평화가 아니잖아요? 미국과 미국인은 평화롭지만, 미국이 관련된 오늘 이라크는 평화롭지 않습니다. 옛날 로마의 평화가 이스라엘의 평화가 아니었듯이 오늘날 팔레스타인의 평화는 이스라엘의 평화가 아닙니다. 평화는 늘 자기들이 만들어내는 고유한 삶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북핵 실험이라는 어려운 국내외 조건 속에서도 지난해 남북한 문인들이 금강산에서 민족문학인협회 결성식을 치렀습니다. 남북 작가대회를 주도해오신 선생님으로서 감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나는 1980년대 중반부터 남북 작가회담을 개최하자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는 그런 말을 하는 것도 힘들 때였습니다. 어쨌든 오늘날 이런 노력들이 종합되어서 하나의 남북한 문인단체를 만들 정도로 진전이 되었습니다. 지난해는 서로 오랜만에 만나서 시도 읽고 술도 먹고 했지요. 그것이 앞으로 중요한 계기가 되어서 우리 민족의 미래에 어떤 새로운 동기가 되어줄 것이라는 작은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유독 ‘말의 타락’ 현상이 심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시인으로서 선생님께서는 오염된 언어로 오염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나는 구원이라는 의미를 너무 크게 볼 필요는 없다고 봐요. 세상은 쉽게 구원할 수도 있고, 쉽게 멀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이라는 문제를 너무 심오하게 보지 말고, 일상 생활에서 행복을 찾게 될 때 그것이 ‘구원’이라고 봅니다. 구원을 너무 절대화할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타락한 언어는 매우 가슴 아픈 현상입니다. 하지만 고상한 언어만으로 세상을 지탱할 수는 없을 겁니다. 말이 타락한 것은 맞지만, 그것을 짓밟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정화(淨化)시켜 다시 그 말을 사용해야 할 운명인 것이지요. 비록 밉고 역겨운 언어이지만 그 언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그 말을 쓰는 우리가 타락한 것이지, 언어 그 자체가 타락한 것은 아니겠지요. 우리 스스로 내부의 타락을 지양(止揚)하면 언어는 더 타락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는 언어를 통한 구원을 믿습니다.

 

 

- 선생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럼에도 2007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대결과 갈등을 부추기는 말들의 각축전이 유례없이 전개될 이런 시·공간 속에서 말의 타락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 될 텐데요.
▲ 현 대통령이 구사하는 언어에 대한 비판이 많습니다.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현 대통령은 대통령 이전에도 말이 많았습니다. 대통령은 권력을 남용하는 게 아니라 권력을 통제하고 언어를 절제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대통령이라는 공직자로서의 규범을 너무 벗어나 자유로운 발상을 가지고 있는데, 대통령이라는 존재가 쓰는 언어는 좀 신중을 기해야 하겠지요. 나는 앞으로 우리의 지도자로 ‘벙어리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안 나와서 답답한 대통령 말이죠. 올해는 또 한 분의 대통령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마도 무지막지한 언어폭력이 난무할 겁니다. 시를 쓰는 나의 입장으로선 이런 상황이 퍽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회에 모든 언어들이 어지럽게 난무하고 난 뒤에는 세상이 좀 조용해지지 않겠어요? 미리 이런 마음의 각오를 하고 있으면, 그래도 잘 견뎌낼 수 있을 겁니다.

 

 

- 언어의 문제는 결국 갈등에서 비롯됩니다. 최근에 이념의 대립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중도(中道)라는 이념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과연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 나는 대안은 시인의 존재 이유와 결부된다고 봅니다. 대안을 찾지 않고 적응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요. 극단화와 이념 갈등은 우리의 체질 문제인 것 같습니다. 16세기 후반에 고추가 일본에서 처음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고추를 많이 먹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고추를 많이 먹지요. 우리는 체질상 어중간한 것과 애매모호한 것을 참지 못하는 기질이 있습니다. 뭔가를 극단화하는 데서 자신의 존재를 찾지요. 나는 이런 점에서 중도의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어느 정도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우리 사회를 치료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좌우로 나뉘어 싸우는 것은 역시 분단이 그 원인이 되겠지요. 이런 역사에도 불구하고 양쪽 모두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중도(中道)니깐 중도를 살려야겠지요. 하지만 나는 ‘신중도’라는 식의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 통일에 대한 선생님의 사유가 많이 유연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통일 문제를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나는 남북이 함께 만나서 사는 ‘공생(共生)’이 가장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통일을 ‘100년 설계’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은 절박하지만 염원일 뿐이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날 느닷없이 이루어지는 점(點)이 아니라, 어디가 분단이고 어디가 통일인지 모를 선(線)으로써의 통일을 꿈꿉니다.

 

 

- 봄·여름·가을·겨울의 변화처럼 그 경계를 확실히 구분 지을 수 없는 자연의 질서로서의 통일 과정을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 맞습니다. 또 하나로 저는 다연방제 통일을 주장합니다. 북한의 경우 연방제 통일을 이야기했지만 김정일도 그것이 탁상공론이라 지적하고 남쪽에서 제안하는 연합제에 공감했습니다. 이러한 단계를 통해 통일이 되겠죠. 하지만 이런 통일 과정 또한 결코 쉽지는 않겠지요. 처음부터 다연방제. 예를 들어 남쪽에도  경기도, 경상도 등 이러한 지역이 자체 연방으로써 연합하는 것이지요. 북한도 여러 지역이 있으니까 지금 남한에서 실시하는 지방자치제를 정치화 시키는 것이죠. 한 지역의 도지사가 수상이 되어서 연합제로 운영하는 것이죠. 말레이시아가 그런 경우입니다. 이것은 만화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이런 방식을 취하면 지역감정이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제주도 출신이나 개마고원에서도 대통령이 나올 수 있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내적인 평화를 이루고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80년대 후반부터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내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는 ‘하나가 되는 통일은 하지 말자’고 생각합니다. 다연방 복합국가라는 틀 속에서 각 지역이 정체성을 가지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체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 1월이라는 시간은 과거와 미래 사이의 시간입니다. 김정환 시인은 “내일은 오늘 부르는 / 노래에 달렸다”고 노래했습니다. 2007년, 우리의 미래는 어떤 미래가 되어야 할까요?
▲ 우리는 6.25 전쟁을 겪었습니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과거입니다. 조상 숭배는 결국 ‘과거 숭배’였습니다. 우리는 조선조 5백년 동안 ‘과거’를 숭배해 왔지요. 불교가 가진 자유로움은 사라지고 과거 지향적으로 살아왔던 겁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겠지요. 근대사 1백년 동안 살아오면서 불행했던 과거를 매듭지었어야 했는데, 과거의 불행했던 시간이 여전히 현재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시장주의와 일방주의에 둘러싸인 세계사적 상황이 우리의 미래를 담보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합니다. 이제는 단순한 과거 지향 따위가 아니라, ‘미래’ 쪽으로 고개를 돌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토론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 2007년은 87년 6월항쟁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른바 ‘87년체제’ 이후에 민주화 세력은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룩했지만, 운동의 성공을 정치의 성공으로 이어받지 못한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 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지식인들은 많은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시련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역사운동이 성공하는 것은 극히 드뭅니다. ‘절반의 성공’을 거두는 것도 큰 수확이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이만큼 민주화되고 성장한 것 자체가 민주화운동 세력이 기여한 공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온전한 성공’은 아니죠. 더 기득권적인 행태를 보인 점도 있고, 그 세대가 변하고 오염된 모습을 보인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의 3분의 1 정도는 성취했고 사회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 최근 생물학 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최재천 교수가 말한 ‘호모 심비우스’(공생인간)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우리 안의 다양한 가치들과 공생할 수 있는 지혜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 나는 좀 일반론을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존재는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공생(共生)이라는 환경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의존(依存)이라는 말에서 ‘의(依)’라는 글자가 중요하다고 봐요. 어디에 의존한다는 것처럼, 자신의 존재를 아름답게 해주는 것은 없습니다. 나의 행복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누군가의 불행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 존재는 그와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과 투쟁의 관계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존재에 관한 일반론이겠지요.
생물도 먹히고 먹습니다. 중요한 것은 먹이를 먹되, 먹을 만큼만 먹고 따로 저장을 하지는 않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무한 저장’을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탐욕’입니다. 그래서 빈부 격차가 생겨나는 것이지요. 그런데 불평등은 영속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이것을 최소화하는 꿈을 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절대가치가 공생입니다. 이것은 23세기에도, 30세기에도 소중한 절대가치가 될 겁니다. 사과 과수원을 보세요. 사과꽃이 피면 나비가 와서 꿀을 먹고 번식을 도와줍니다. 그리고 동물들은 천지조화(天地造化)에 의해 섹스를 합니다. 이러한 공생 관계는 많지요. 이것이 인간에게 없으란 법은 없습니다. 나는 최고의 지옥은 ‘고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인간이 갈망해서 만든 것이지요. 공생의 원리가 작용한 겁니다. 여기에 독과점, 소유, 자본주의가 생겨나서 공생이 깨지게 된 겁니다. 우리 얼굴만 봐도 우리 눈도 코나 입 없이 존재할 수는 없잖아요?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생 관계와 적대 관계가 오갈 거라고 봅니다. 자본주의의 극한까지 왔으니,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이 없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체제가 더 가면 자본주의도 끝나고, 다른 이데올로기가 나올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부터 공생을 위한 실천을 해야겠지요.

 

 

- “탐욕 앞에서는 자연도 두려워한다”고 한 간디의 말이 떠오릅니다. 선생님 말씀은 결국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사유 전환이 있어야겠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최근 문학 경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 나는 ‘내면’이야말로 문학과 예술의 지옥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타인을 자기화하지 않고, 자기를 타인화하지 않는 꽉 막힌 이기주의로서의 표현과 자신을 과시하는 식의 언어는 이야기할 가치가 없다고 봐요. 내면을 자꾸 넓혀 외부가 되는 우리 작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러면 우리 이웃집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 하고, 이웃들의 마음속을 알아야겠지요. 젊은 시인들이 술도 안 마신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은 두뇌의 시가 아니라 ‘심장의 시’를 써야 한다는 말이었지요. 세상에 꽃은 많지만, 우리 마음에 더불어 같이 피는 꽃이 드물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 올 한해 소망하는 일이 있으시다면….
▲ 지금 하는 작업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게 걱정됩니다. 부르는 곳이 늘어나니,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도 됩니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밀실’인데, 그런 시간이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올해는 밀실에 있는 시간을 더 늘리고 싶습니다.

 

 

고은은
고은은 193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났다. 전란 중인 1952년에 입산해 승려가 되었고, 1958년 『현대시』로 시단에 데뷔했다. 첫 시집 『피안감성』에서 폐허와 허무를 노래했던 시인은 1962년 환속 후 열정적으로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 등에 참여했으며, 연작시집 『만인보』와 『백두산』, 『한용운평전』 등 시·소설·평전·산문에 걸쳐 1백권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저술 활동을 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하버드대 예칭연구소 연구교수 등을 지냈으며, 만해문학상·대산문학상·단재상 등 여러 상을 받았다. 특유의 직관적 상상력으로 한국문학의 영토를 무한 확장하고 있으며, 외국에서 선시(禪詩) 계열의 시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현재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고영직은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고영직은 소설을 쓰고자 동국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소설가 대신 문학평론가가 되었다. 그동안 「한국문학과 베트남전쟁」과 「'자발적 가난'의 한 경로」 등 다수 평론을 썼으며, 책을 읽고 모으고 '썰'을 푸는 것을 좋아한다. 한 주간지는 그를 '돈 없고 할 일 많은 평론가'라고 묘사했다. 공저로 『다시 희망을 묻는다』(1999)와 『세계의 역사기념시설』(2006)이 있으며, 2007년에 평론집과 산문집을 펴낼 계획이란다.
현재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이라는 핸드폰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민족문학연구소 연구원과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 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1~2년 전부터 인문학의 부활과 '멸공봉사(滅公奉私)'의 윤리학을 위한 몽상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대담=문학평론가 고영직  /정리=류설아 rsa@kgnews.co.kr
사진=최윤영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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