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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에게 길을 묻다<14>-주정산 천태종 총무원장

 

“자신을 구제할 수 있는 근본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말은 저를 염두하고 한 것처럼 지금까지도 제 삶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부처의 연기사상은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난다'는 이치에 근원이 있습니다.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없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도, 가정을 변화시키는 힘도,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도 모두가 ‘자(自)’에서 시작합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 담화에 앞서 사회적 이슈에 관한 종단의 의견이 듣고 싶습니다.
- 오늘까지 종단 운영을 맡아 온지 9개월이 됩니다. 이때까지 40여년 동안을 부처의 말씀에 귀 기울여 살아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시사적인 문제는 날카로운 시각이나 적절한 대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무관심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부처께서도 8만의 성도를 만들기 위해 언제나 세상에 있었듯이 종단도 항상 노력중입니다. 저 역시 40여년 수행에서 마음으로 깨달아온 답변을 전하겠습니다.

 

 

▲ 2007년을 밝히는 1월입니다. 16대 천태종 종단을 맡은 스님의 덕담 한말씀 부탁합니다.
- 수행자, 정치인, 경제인 그리고 학자나 직장 등 자신의 분야에서 사람들은 오늘을 맞이합니다. 오늘은 단 하루입니다.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최선의 방법을 다 해주길 바라는 덕담이 있습니다. 우리는 희망을 가슴깊이 새겨야 합니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희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오늘은 최고로 기쁜 날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은 힘겨운 하루가 될 뿐입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희망과 꿈을 품고 살아야 오늘도 그리고 금년 전체를 ‘보람’이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 사회가 날이 지날수록 각박하고 서민들의 삶이 녹녹하지 않는 현실이라고 합니다. 우리 서민들이 희망을 만들어가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정산스님께서 우리 중생들에게 전하는 하루를 살아가는 마음자세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또 종단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 천태종을 주창하신 상월 원각 대조사 스님께서는 ‘자신을 구제할 수 있는 근본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달마대사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은 바로 자신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희망은 다른 곳 다른 형태로 있기보다는 바로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으며 자신이 어떤 마음자세를 갖는가가 중요합니다.
종교는 근본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1차적 기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발전과 변화를 이야기할 때 우선 고려하는게 ‘자(自)’입니다.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선 늘 자신을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부처는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가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부처의 연기사상 시작이자 믿음입니다. 부처의 연기사상은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이치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면의 변화는 곧 세상의 변화와 이어집니다. 부처가 만들었던 ‘승가’라는 수행공동체가 이제는 종단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개인이면서 동시에 공동체가 되는 세상에서 ‘자’가 됩니다.

 

 

▲ 2007년 12월에 있는 대통령선거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천태종에 대권주자들이 방문도 했었는데, 어떤 말씀을 해주셨는지요?
- 다들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는 깊고 깊은 지역감정이란 골이 있습니다. 지역감정이 술술 풀려나가는 대통령선거가 되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지도자는 4천만 국민의 마음을 모두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바다와 같습니다. 다른 모든 것이 흡수되는 바다는 한물입니다. 국민의 마음을 포용하고 흡수해 한마음으로 융합할 수 있어야 지도자라 할 수 있습니다. 예전처럼 지역감정을 들춰내 서로를 갈라놓는다면 국민의 마음도 융합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은 이 땅의 지도자입니다. 대권주자는 바다와 같이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 지도자의 선택이 매우 어렵습니다. 지연·학연·혈연에 얽매여 실체를 잘못보기도 합니다.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삶이 힘겨움으로 남기도 했습니다. 좋은 지도자, 참된 지도자를 고르는 안목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 한국은 경제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욱 큰 걱정은 국민통합입니다. 모든 국민이 뜻을 같이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통합이 이뤄진다면 우리 국민은 또 다시 저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해방 전후와 새마을 운동 등 ‘하면된다’는 우리 국민의 의지는 강합니다. 경제는 틀림없이 회생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국민의 마음은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앞으로 남북통일, 다른 국가와의 협약 등 다양한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이를 선두에서 해결해갈 수 있는 사람은 국민의 마음을 포용하리라 믿습니다. 정치적 이념을 넘어,시대의 아픔을 넘어 모두를 품을 수 있는 지도자...
 우리 국민은 2007년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한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종교계 또한 서로의 구분보다는 공생의 의미를 되새길 때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부 편협한 종교관으로 통합을 해치는 모습을 종종 봤습니다. 다른 종교와의 진정한 화합과 이해는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언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종교가 주창하는 궁극의 이상향이 각자 다를 수 있지만 목표는 자비, 사랑, 평화 등으로 같습니다. 그러나 모든 종교가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각자의 믿음을 이해하고 인정할 때만이 종교가 지향하는 이상향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지점에서의 화합과 화해입니다. 지금도 종교지도자협회와 한국종교평화회의 등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평화를 위해 다함께 노력하겠다는 뜻은 이미 한마음입니다.
총무원장이 되기 이전인 2005년 12월 25일. 대구 대성사 주지때의 일입니다. 달서구의 한 성당을 찾았습니다. 미사에 참석했고 성탄 축하의 말을 전했습니다. 처음엔 신도들이 부담스러워했지만 진심을 이해한 이후부터는 서로의 왕래가 가능해졌습니다. 미사를 마친 후 성당 신부께 “이번엔 제가 왔으니 석가탄신일에는 신부님께서도 한번 오시지요”라며 참석을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이후 2006년 9월에는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36주년 기념식에 초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다른 종교의 왕래는 가슴이 따뜻합니다. 가는 정과 오는 정은 서로의 종교를 이해하고 인정할 때 시작됩니다.

 

 

▲ 정산스님께서 새터민(북한 이탈주민)에 대해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그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기억이 있습니다. 새터민에 대한 관심 시작과 그에 따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 천태종은 개성 영통사 복원을 시작으로 북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새터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새터민은 종교문제도 국가문제도 아닌 사회전체적인 문제입니다. 그들이 부딪히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줘야 합니다. 탈북자들이 받는 3개월여 기간의 정착교육은 부족합니다. 평생을 다른 사회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교육 이후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실정입니다.
천태종은 지난해부터 새터민들을 위한 ‘새터민 템플스테이’를 열고 있습니다. 2박3일간 진행되는 산사체험은 그들에게 남한 사회의 이해에서부터 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삶을 이해하는데 작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산사체험을 마친 한 새터민이 남겼던 ‘정말 행복 했어요’라는 한마디는 지금도 가슴속 깊은 곳에 남아 있습니다.

 

 

▲ 2006년에는 남북민족문학인협회가 교류를 시작했고, 천태종에서도 불교문화를 대중화하려는 노력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실제 불교의 평가는 산속에 묻혀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천태종은 대중에게 한 발짝 더 나아가기위한 노력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 불교문화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한국국민들이 불교 문화권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를 마음으로써 정말 순간의 기쁨과 즐거움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게 종교계의 책임이라 생각합니다. 지난날 보더라도 90%가 불교문화재다. 이건 국민 정서가 정신적 바탕이 됐다는 하나의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천태종은 전국 56개 지역에 합창단을 제일 먼저 만들었습니다. 또 83년도에는 부산에 유치원도 세웠습니다. 우리는 소질을 발굴하기보다는 인재를 양성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상월 대조사 스님의 탄신100주년 기념행사가 2010년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 기념사업회를 구성했습니다. 또 스님의 뜻을 전파하기위해 문화 측면에 더 많은 힘을 쏟고 있습니다. 또 기념행사에 맞춰 2010년에는 스님의 삶을 구성한 뮤지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른 연재 문학 사업에도 관심을 돌리고 있습니다.
현재 관문사에는 국보급 2점과 보물급 7점 등 지정된 문화재가 있습니다. 문화재를 널리 알리기 위해 박물관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서예 등 다양한 방면의 문화에 대한 홍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그럼 2007년 천태종 역점 사업이라면 무엇이 있습니까?
모든 사업은 최선을 다하겠지만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과 이론이 다를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를 이해하고 사업을 살펴봐야 합니다. 현재 종단은 2010년 대조사 탄신 100주년 사업의 기반조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대북문제와 포교 사업 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중 포교가 중요하게 제기됐습니다. 덴마크에는 이미 포교당을 세웠습니다. 또 지난해 7월에는 캐나다 토론토 소재 포교당의 봉불식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신도의 배가사업을 준비하는 것과 사회에 환원하는 것도 포교가 됩니다. 종단은 포교를 위해 ‘자(自나)’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수행 결과에 따라 포교 사업의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다양한 포교의 정진으로 사회적 환원을 이룰 수 있도록 2007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힙합과 락을 하며 대중가요를 부르는 기사들이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상당히 절친하게 다가오는 듯합니다. 읽어야 하는 기사보다 스님 말씀이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 스님들의 재주가 무척이나 다양합니다. 글(서예)부터 그림, 범패(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질을 계발해주기 위해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스님들의 다양한 재주를 위한 재정지원도 늘려갈 계획입니다.

 

 

▲ 정산스님은 어떻게 출가하시게 됐는지요? 어렸을 때 병환으로 구인사를 찾았다가 스님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 ‘자신을 구제하는 근원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는 말은 저를 두고 한 말처럼 느낍니다.
어렸을 땐 생활이 참 어려웠습니다. 농촌 대부분의 현실이었지요. 등명동 기와집. 동네 170호중에서 딱 1호만 기와집이었기에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성장하면서 집안이 몰락했습니다. 초등학교도 다 다니지 못했고,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는 4년을 다녀야 했습니다. 
당시 집안은 복을 얻기 위해 토신, 성불신 등 다양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너무 많았던 탓인지 기울었던 집안은 더 이상 서지 못했습니다. 이때 구인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소백산 자락에 산 부처님이 있다. 한 가지 소원은 다 이룰 수 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희망에 무작정 찾아가 집안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자 스님은 ‘집의 물건을 태우고, 버리고, 나눠줘라. 손재가 없는 서쪽에 가라’는 말을 했습니다. 집안에 복이 들어오길 원했는데 오히려 집을 통째로 버리라하니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습니다. 이튿날부터 3일간 기도를 했습니다. 이후 불투명했던 결정은 집안 모든 물건이 없어도 된다는 판단으로 확고해졌습니다. 집안 물건은 더 이상 모두 정리했습니다. 그때서야 깨달았죠. 이 모든 것이 집착이었다는 깨달음. 집착을 버리니 해방이란 복을 얻었습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구인사에서 세속의 집착을 버리고 제 스스로를 헌신하며 살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 집착. 요즘 청소년들부터 갓 사회에 진출하려는 젊은이가 돈, 명예에 집착하는 듯합니다. 어찌해야 좋을지 답답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스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 법하경에는 제자들에게 수기를 한 기록이 있습니다. 수기는 예언을 말합니다. 헤아릴 수 없는 기간 동안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예배를 하고 공경한 이후에 열심히 정진한 이후 성불한다는 예언입니다. 성불은 부처가 된다는 뜻입니다.
육체를 갖는 것은 순간이지만 영혼은 끝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끝없는 영혼의 세계에서 육신을 갖는 순간은 우주 전체에 점 하나를 찍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숨을 쉬고 눈으로 빛을 보지만 결과적으로는 허무를 느끼게 됩니다. 젊은사람들부터 나이든사람까지 돈의 집착은 단지 집착에 그칠 수 있다는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이런 집착은 사회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행동하려한 마음, 그것은 육신을 떠나는 순간 영원으로 남습니다. 도둑질하려는 마음에서 육체를 벗어나는 순간 도둑의 마음이 영원히 남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육신을 떠나려 하는가의 자문은 깨달음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청소년들의 마음은 기성세대가 어떻게 만들어왔는가에서 찾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들은 잘못하면서 아이들에게 잘하라는 것은 잘못입니다. 예를 들어 이혼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혼하는 과정에서 순수하게 마음이 맞지 않아서 헤어지기보다는 다투고 싸우는 모습을 봤습니다. 이 가정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아이의 경험은 쉽게 풀어지지 않습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과제입니다.

 

 

▲ 40여년동안 종교인으로 살아오신 정산 스님도 보람과 후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 1974년 정도였습니다. 구인사에 입산한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당시 구인사에서 기도를 올리면 병이 낫는다는 소문에 많은 사람이 찾았습니다. 그중 경북 포항시에 한 젊은이가 구인사를 찾았습니다. 폐결핵으로 고생해온 그는 기도를 한 후 포항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가 떠난지 4시간여 후 영촌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젊은이가 각혈하며 의식을 잃었다는 연락이었습니다. 도착했을 땐 각혈로 온통 피범벅이 됐으며 여전히 의식을 찾지 못했습니다. 병원을 찾아 영주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병원에선 큰 병원으로 옮기라는 말뿐이었습니다. 대구까지 가야했습니다. 곧바로 나와 택시를 세웠습니다. 겨우 대구에 도착해 치료를 받은 후 차츰 호전을 보였던 젊은이가 ‘고마워요’라는 말을 했을 때가 기억납니다. 또 대구까지 택시를 운전한 기사가 자신의 집에서 담요를 꺼내 젊은이의 체온을 유지하려 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에게 준 기쁨입니다.
그러나 원하지 않던 종단 간부들의 갈등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여 서로를 존중하며 오늘을 맞이하는 우리지만, 종종 갈등이 깊어지기도 합니다.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천태종 14대 총무원장 주정산(59)스님
1969년 천태종 중흥조(중건발전시킨)인 상월 대조사(가장 큰 스님) 를 은사로 득도한 정산 스님은 재무부장과 사회부장, 부원장 등 천태종 총무원 주요소임을 두루 역임했으며, 감사원장과 종회 부회장 등도 지냈다.
 총무원장 임명 직전까지 종회 의장을 비롯해 금강대 이사와 천태종복지재단 이사, 대구 대성사 주지 등을 맡았다.

 

 


정상환 남서울대 외래교수
정상환은 수원 수성고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대통령 공보비서실 행정관, 경기도지사 비서실장, 경기문화재단 기획기조정실장, 경기도 2002년 월드컵 수원경기 추진위원회 기획조정실장을 지냈으며, 기업 경영 일선에도 참여한 바 있다. 신문·방송 등 각종 매체에 칼럼을 쓰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립 한경대학교 전자정부대학원, 남서울대 강의를 하고 있다.

 

 

장문기기자 hichang6@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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