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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청춘]인생 2막, 천사들과 함께 동심 여행

동화구연가 이정숙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도깨비가 소금장수를 잡아먹으려하자 다담반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일제히 소리질렀다.

“안돼, 저리가 저리가란 말야”

무서운 도깨비 이야기에 움추리고 있던 아이. 까만 눈망울을 뱅글뱅글 돌리며 할머니의 입을 주시하던 아이.

한켠에서 조용히 경청하던 아이까지 모두 합세했다. 다담반 아이들은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음성으로 도깨비를 쫓았다.

그러나 할머니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깨비 깨비 깽깨비 작아져라 뚝딱!’하고 도깨비가 주문을 외우자 도깨비가 작아졌어요. 이 때다싶은 소금장수는 재빠르게 도깨비를 물병 속에 집어넣고는 막아버렸어요.”

“우하! 살았다. 만세!” 아이들은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하하하, 깔깔깔”하고 함박 웃음꽃을 피워냈다.

“우리 친구들, 오늘 도깨비와 소금장수 이야기 재밌었어요?”

아이들은 합창을 하듯 “네~”라고 큰 소리로 화답한다.

“또 해주세요, 선생님. 네? 또 해주세요”

아이들은 동화를 또 읽어달라며 떼를 쓴다. 동화가 끝날까봐 조바심을 내는 아이들의 웅성임이 한참일 때다.

할머니는 가방을 들고 잠시 밖으로 나간다. 1분쯤 지났을까. 할머니는 손을 등뒤로 숨긴 채 들어와 의자에 앉는다.

할머니의 입을 타고 새로운 동화 나라가 아이들 앞에 펼쳐진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 넘어가는 것도 할머니에게는 또 하나의 묘미다.

“짜잔~~”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손을 내민다. 아이들은 박수치며 깔깔대고 웃는다. 이번엔 인형극인 것 같다.

 

 

“옛날 옛날에 다섯 손가락이 오순도순 살고 있었어요. 어느날 다섯 손가락은 싸움을 했어요, 왜냐구요? 서로 자기가 최고라고 말예요.”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됐고 20여분후에 끝이났다.

“오늘은 여기까지. 우리 친구들 재미있었어요?”

“네, 선생님”

할머니는 “다음 시간에 또 만나요”라며 아이들에게 손을 흔든다.

아이들은 할머니와 헤어지는게 못내 아쉽다.

“안녕히 가세요”

동화구연가 이정숙(68)할머니. 그의 표정은 해맑았다. 할머니는 아이들이 내 친구라는 사실에 의심이 없다.

할머니가 동화구연을 시작한 것은 꼭 2년전. 집에 있기가 무료해 집 인근의 서호복지관을 찾은게 인연이 됐다.

처음엔 스포츠댄스를 배웠다. 운동에 열심히던 어느날. 복지관 게시판에 동화구연반 수강생 모집 광고를 봤다.

순간 할머니는 무릎을 탁! 치며 생각했다. 그래 바로 저거다. 반가웠다. 할머니는 친손자에게 동화를 읽어줄 때가 생각났다. 맞아 내 건강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늙으막에 좋은 일을 해 보자. 할머니는 그길로 동화구연반 학생이됐고, 그렇게 2년을 열심히 공부했다.

할머니는 아이들과 동화속의 나라에서 다양한 인물로 변신하는 지금의 생활이 마냥 행복하다.

“동화구연을 하다보니 나이를 잊었어요, 아이들이 모두 친구가 됐는걸요.”

 

 

할머니는 이를 통해 약간의 돈도 번다. 월 20만원정도다. 할머니는 비록 적은 돈이지만 나이먹어 버는 것이라 더 애착이 간다고 했다.

돈 버는 일보다 더 즐거운 것은 ‘선생님, 선생님’하며 아이들이 품에 안길때다. 이때는 자신이 천사가 된 기분도 든다. 다른 일자리에서는 전혀 이런 기쁨을 맛 볼 수없을 것이라고 할머니는 확신했다.

“약간의 돈도 벌고, 건강도 좋아지고, 지금의 생활이 너무 좋아요.”

할머니는 비교적 평범한 젊은 날을 보냈다. 궂이 어려운 일이 있었다고 떠올리면 젊었을 때 몇가지가 있긴 하다.

지금도 애뜻하게 다가오는 딸이야기를 할때는 눈시울을 붉혔다. 37년 전. “딸아이가 갓 돌지났을 때죠. 목욕을 시키기위해 욕조에 아이를 넣었는데 뜨거운 물였어요. 아이는 화상을 입었죠. 지금도 딸 아이 생각만하면 가슴이 메여집니다. 때문에 요즘도 아이들만보면 옛날의 찬찬치 못했던 생각이요. 그래서 동화구연할 때도 혹시 위험한 것은 없는지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고 있어요.“

현재 미혼인 딸은 꽃꽃이 연구가로 활동하고 있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대 수술을 받은 것도 잊을 수 없는 아픔이다.

그런 일 말고는 평범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같다. 그러나 경로당에 가야할 나이가 되면서 고민이 시작됐다.

“나이가 들었다고 소일하면서 시간을 소비하기가 싫었어요.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하고 싶었는데,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죠. 그래서 복지관을 찾았어요. 예절사 자격증을 비롯해 2개의 자격증도 손에 쥐었죠. 앞서 밝힌대로 동화구연 수강생 모집 광고를 보고 이거다 싶었던게 지금에 이르고 있어요.”

2막의 인생을 확실하게 변화하고 싶었다는 할머니. 이정숙할머니는 남은 여생도 건강이 허락하는한 천사같은 어린이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어쩌면 이 시대의 이름없는 ‘페스탈로찌’나 ‘피터팬’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정숙 할머니가 “도깨비가 잡혔어요”라고 하자 어린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고 있다.

‘동화 할머니’와 함께 구연동화를 마치고 활짝 웃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할머니의 웃음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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