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시 미국 대통령이 다시 한 번 북한에 대해 평화와 화해의 미소를 보냈다. “북한이 검증 가능한 핵 폐기 조처를 취한다면 김정일 위원장과 평화협정에 공동 서명하고 싶다”는 말의 반복이다. 한반도 냉전의 당사자인 미국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우리 민족에게는 반세기에 걸친 가뭄을 끝내는 단비이며, 특히 북한에게는 적이 친구가 되는 우호의 메시지이다.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분단된 지는 올해로 62년째이다. 그동안 남·북은 전쟁을 치렀다. 미국과 중국은 민족 내부의 전쟁에 각각 개입했다. 3년간의 혈투 끝에 포성은 멎었지만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휴전협정이란 문서 하나와 미군 주둔이라는 상처가 아직 남아 있을 뿐이다. 이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더 나아가 북한과 미국 사이에 평화조약 체결도 가능하다는 것이 부시 대통령의 생각이다. 북·미 수교는 당연하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 초기에는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보지 않았다. 퇴임하는 클린턴 대통령이 쌓아놓은 북·미 화해 정책을 거부했다. 그리고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매도하며 선제 공격의 기회를 노렸다. 북한은 두려웠다. 그래서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개발했고, 마침내는 핵 실험에 성공했다.
미국은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미국이 북한을 위협하는 동안, 북한은 기가 꺾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미국에 맞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국은 북 핵 폐기를 다루는 베이징 ‘6자 회담’을 제안했다.
북한은 당당하게 6자 회담에 나갔다. ‘행동 대 행동’의 원칙 아래 협상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이 하나를 양보하면 미국도 하나를 양보하라”는 의미이다. 북한은 핵 개발의 원인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결과라며 미국과의 양자 대화를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합의된 최초의 문서가 9.19 공동선언이다.
이 선언은 2.13 합의문을 생산했다. 이 합의에 따라 미국은 마카오의 한 작은 은행(BDA)에 예치된 북한 자금 2천만 달러에 대한 동결을 풀어줬다. 북한은 이에 대한 응답으로 1차 이행조처를 마쳤다.
이제는 2.13 합의 2차 이행단계로 접어드는 순서이다. 북·미는 이달 초 제네바에서 ‘제2차 북·미 관계 정상화 실무회의’를 갖고, “북한은 올해 말까지 모든 핵 시설을 불능화 하고 핵 프로그램을 전면 신고하며, 미국은 이에 상응하는 정치·경제적 보상조처를 취하기로 합의”했다.
이 모임은 별도의 합의문을 내지 않았지만 미국측이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 조처를 취하기로 약속했을 것은 분명하다. 이 합의 내용은 이달 중순 베이징에서 열릴 6자회담을 거쳐 2.13 합의만큼의 무게 있는 문서로 발표될 것이다.
6자회담은 참 잘 만들어진 틀이다. 남·북과 주변 4강국이 참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의 핵 개발이 성공하기 이전에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북의 핵 보유는 남측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러시아도 반대한다. 북한은 미국과의 수교를 최대 현안으로 삼고 있는 바, 이런 국제기구에 참가하면 핵을 폐기하는 대가로 경제 지원과 북·미 수교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제안은 북측의 예상을 넘는 큰 선물일 수 있다. 그는 임기 안에 무언가 업적을 남겨야 한다. 취임 이후 여러 차례 전쟁을 도발했지만 다 실패했다. 이라크 전쟁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부시를 끌어드리고 있다. 지난 연말 의회 선거에서는 민주당에 참패했다. 내년이면 대선을 치러야 한다. 북 핵 문제만 해결한다면 그는 처음으로 대어를 낚는 셈이다. 그를 이라크 수렁에서 건져줄 천사는 한때는 적이었던 바로 김 정일 위원장뿐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7일 호주 시드니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북한이 검증 가능한 수준에서 핵을 폐기한다면 북한과 평화협정은 물론이고 평화조약(이 대목이 좀 애매하지만)도 체결할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를 김 위원장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조약은 미국 법에 따르면 상원의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북한이 이런 불가역적인 조약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북·미 화해 시대는 남·북 관계를 한 단계 더 진전시킬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북·미가 남측의 어께 너머로 직거래하는 것을 방관할 때,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남측이 배제될 우려가 높다. 노 대통령이 10월 초 평양을 방문하는 것은 이런 우려를 예방하고, 우방보다는 동족이 더 가깝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의미가 있다. 반세기만의 북· 미 화해는 한반도의 변혁이며, 동시에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