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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쇄살인사건 재수사 관심

당시 사건담당 형사 조광식씨
“유력 용의자 단서없어 놔줘 과학수사 도입 땐 검거가능”

경찰청이 지난 24일 안양 초등생 납치·살해사건을 계기로 미해결 살인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검토 중인 가운데 공소시효가 만료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재수사 진행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87년 화성연쇄살인사건과 동일한 수법으로 살해된 수원여고생살인사건 당시 담당형사였던 조광식 씨는 “범인은 수원에 살아있다”고 확신했다.

87년 12월24일 수원에서는 화성연쇄살인사건과 동일한 수법으로 김모(당시 19세) 씨가 살해됐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조 씨는 수원여고생살인사건은 발생지역이 달라 화성연쇄살인사건에 포함돼 있지 않지만, 범인은 한명이라고 밝혔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형사들은 용의자 M 씨와 J 씨의 친구들을 통해 이들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곧바로 M 씨와 J 씨를 붙잡아 조사에 들어갔다.

조 씨는 이 과정에서 M 씨와 J 씨가 수원여고생살인사건과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임을 자백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현장검증을 하던 중 M 씨가 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도주했고, 이를 잡으려는 형사들과의 실랑이 속에 넘어져 뇌진탕으로 숨을 거뒀다.

조 씨는 “M 씨가 형사들의 고문으로 죽었다는 여론몰이로 징역살이를 했는데 붙잡힌 날이 정확히 88년 1월14일이었다”며 “‘박종철 고문사건’ 1주년 기념일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조 씨는 “담당 검사도 M 씨와 J 씨가 범인임을 인정했고, M 씨를 부검했던 담당 의사도 고문으로 사망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여론몰이 속에 일선 형사들이 희생됐다”고 주장했다.

이후 수사는 종결됐고, 어느 누구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수사종결을 위해 먼저 나서지 않았다. 수사권을 잃은 담당형사들만이 2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J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추격할 뿐이다.

조 씨는 수감 중에 J 씨와 함께 수원교도소 미결수 방에 있었던 김 씨를 알게 돼 당시 함께 수감돼 있던 사람들이 J 씨에게 형사들이 폭행해 거짓자백한 것처럼 진술하라는 충고를 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이 사실을 들은 조 씨는 수감 후에도 용의자 J 씨의 행적을 좇아, J 씨가 88년 2월2일 석방되고 한달 뒤 바로 입대해 9월 정기휴가를 나왔을 때 7차 사건이 터진 점과 J 씨의 90년 9월 만기제대 후 40여 일만에 화성연쇄살인 9차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을 밝혀냈다. 8차 사건은 유사범죄로 범인이 검거됐다.

조씨는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시기가 너무나도 잘 맞아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또 “20년 전 형사들은 열정이 있었지만, 과학수사가 도입되지 않아 결정적 단서잡기가 힘들었다”고 아쉬워 한 뒤 “재수사에 나선다면, 당시 부검했던 의사와 미결수 방에 함께 있었던 김 씨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면 J 씨의 혐의를 어느 정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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