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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희칼럼] 언론, 독자를 위해 울리는 종

 

오는 7일은 제 52회 신문의 날이다. 이 날은 1896년 망명지 미국에서 귀국한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창간한 날을 기념하여 제정된 것이다. 반세기 동안 꾸준하게 기억하고 기념되어온 날이다. 올해의 표어는 ‘세상을 읽어라 신문을 펼쳐라’다. 독자의 감소 추세가 역력하다 보니 채택한 표어로 보인다.

서재필은 1884년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미국으로 망명한다. 미국에서 신문물을 익힌 그는 1895년 갑오경장이 발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한다. 갑오경장은 일본의 압력으로 고종이 결단한 근대화의 시작이다.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창간한 것은 전적으로 그의 갑신정변 동지이자 개혁정부 내부대신이던 유길준의 지원 덕택이었다. 서재필은 첫째로 조선 사람들이 그 동안 10년 사이에 개화사상은 어느 정도 보급되었지만 급변하는 국제정세에는 어두우니 국민을 계몽하려는 뜻이 있었고, 둘째는 일본인들이 만드는 한성신보의 폐해가 컸기 때문에 새 신문을 만들었다. 한성신보는 일제의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고, 조선 황실을 비방하기 일쑤였다.

 

황실 측은 이런 보도에 불만이었다. 독립신문은 상업광고를 게재하고 구독료를 받는 한글 신문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현대 신문의 효시인 셈이다. 발행 부수는 고작 2,500부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식자층은 신문 한 부를 수십 명이 돌려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신문도 오래 갈 수 없었다.

 

1898년 이 신문의 지원세력인 독립협회가 강제 해산당하면서 정부는 임차 사용 중인 신문사 사옥의 반환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서재필은 더 이상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신문사에서 손을 뗐다. 이후 신문은 발행되지 못했다. 이로써 국내 수구세력과 일본에 맞서 개화와 진보를 표방하던 독립신문은 3년 8개월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제는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조선 통치의 큰 틀을 문화주의로 전환한다. 그래서 조선인에게도 신문 발행을 허가하는데, 이 국면을 이용해 1920년 등장한 신문이 지금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이다. 총독부가 이들 신문을 허가한 이유는 간단하다. 신문사가 만들어지면 반일 분자들이 모여들 것이고, 글을 통해 ‘블령선인’을 파악할 수 있다고 예상한 것이다.

 

일제는 이후 당근과 채찍을 써서 그들을 조종할 수 있었다. 이 두 족벌신문이 언론 학자들에 의해 비판받는 이유도 다 그런데 있다. 박지동(광주대)은 독립투사 김구에 관한 보도가 대표적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김구 등 독립투사들이 거사한 기사가 나오는데 그때마다 두 신문은 일제 경찰의 자료대로 ‘테러분자’ ‘반역도배’등으로 매도했고, 동북 만주 일대에서의 독립군 활동은 거의 비밀에 붙여지거나 어쩌다 경찰서 습격 사건이 날 경우에는 ‘비적’ ‘공산비적‘등으로 몰아붙이며 ’용맹한 황군‘ ’관동군‘의 토벌에 의해 궤멸되었거나 격퇴되었다는 기사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민주화 이후 메이저신문의 보도 태도는 정도를 일탈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 보도와 공정논평보다는 이미지 보도에 주력하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로부터 받는 느낌을 말한다. 이미지 보도가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니나 정파적 이해관계에 좌우될 때는 문제가 된다. 노무현 시대에는 한없이 노무현 이미지를 깎아 내렸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좋은 이미지 만들기’에 극성이다.

 

‘규제 전봇대’를 시작으로 ‘연필 쓰는 대통령’ ‘실용주의 아침 식사’ ‘꼼꼼 대통령’ 이라는 친 이명박적인 단어가 지면을 장식하고 있고, 이런 보도는 앞으로도 정부 권력과 언론 권력의 ‘이해가 일치’하는 한 지속될 것이다. 이를 중단시킬 힘은 현명한 독자에게만 있는 것이다. 언론의 붓은 동호지필(董狐之筆)이어야 옳다. 동호는 춘추시대 진나라 사관(史官)이다.

 

재상 조순의 간언에 화가 난 군주 영공이 그를 죽이려 했다. 조순이 도망간 사이, 그의 먼 형제 뻘 되는 조천이 영공은 ‘불군(不君)’이라며 방벌했다. 이를 두고 동호는 “조순은 군주를 시해했다”고 썼다. 돌아온 조순이 이를 따지자 “물론 재상이 죽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상은 국내에 있었고, 돌아와서도 범인을 처벌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재상이 살인자다”라고 맞섰다. 조순은 옳은 말이라 생각하고 죄를 받았다.

이명박 시대의 언론 정책은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으니 걱정이다. 그래도 참언론인이라면 동호의 붓처럼 사실대로 써야 한다. 언론은 “오직 독자를 위해 종을 울려야 하는 직업”이다. 신문의 날을 맞아 스스로를 경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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