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 28돌을 보내면서 떠올리게 되는 것이 무시무시하고 삼엄했던 계엄령이다. 우리나라 계엄령은 1948년 7월 제정·공포·시행된 대한민국 헌법 64조에 대통령의 계엄선포권을 규정하고 있다. 계엄령이 제정된 뒤 최초로 발령된 것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때 육군 제8사단장이 전쟁 발발 당일인 6월 25일 오전 10시를 기해 강원도 일대에 내린 것이었다. 뒤이어 7월 8일에는 대통령이 전라북도를 제외한 전국에 내렸고, 7월 21일에는 전국으로 확대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7년 동안 국내 상황은 정쟁(政爭)은 있어도 평화는 유지되었으나 1960년 자유당 일당 독재를 규탄하는 4.19의거가 발생하자 서울을 비롯한 5개 도시에 비상 계엄령이 선포되고, 1961년 5월 16일 박정희가 이끄는 군사 쿠데타와 함께 전국에 비상 계엄령이 내려졌다. 군사정권하인 1964년 6월 3일 1만여 명의 학생들이 대 일본 굴욕 외교 규탄 시위를 벌이자 서울 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했고, 1965년 8월 고대와 연대에 무장 군인이 난입하자 서울에 위수령이 발동됐다. 1972년 10월 17일 ‘10월 유신’을 선포하면서 비상 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국민투표를 실시했는데 이 헌법은 박정희에게 영구집권의 길을 터주었다. 유신헌법이 대통령 간선제, 대통령 긴급조치권, 국회 해산권, 국회의원 3분의 1과 법관 임명권을 부여했으니 독재 그 자체였다. 그러나 독재와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 국민이다. 1973년 10월 2일 유신체제하에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자 정부는 긴급조치 1~3호를 선포했으나 민주화 열망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1973년 10월 18일 마산사태에 이어 10월 26일 박정희가 시해 되면서 다음날 전국에 비상 계엄이 선포됐다. 1980년에 접어들면서 민주화운동이 한층 거세지자 전두환의 신군부는 5월 17일 전국에 비상 계엄을 내렸다. 마침내 5월 18일 광주 민주화운동이 전개되면서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28년이 지난 지금 5.18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 했을 뿐만 아니라 일류 국가로 도약하는 정신적 지주(支柱)가 되었다.
우리나라 계엄사(史)는 6.25전쟁 때를 제외하고는 민주주의 탄압의 도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