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1 (목)

  • 흐림동두천 27.0℃
  • 맑음강릉 32.3℃
  • 흐림서울 28.0℃
  • 흐림대전 27.8℃
  • 맑음대구 28.8℃
  • 맑음울산 29.1℃
  • 흐림광주 28.1℃
  • 맑음부산 29.1℃
  • 맑음고창 28.7℃
  • 맑음제주 30.2℃
  • 구름많음강화 27.5℃
  • 흐림보은 26.6℃
  • 맑음금산 ℃
  • 구름많음강진군 28.5℃
  • 맑음경주시 30.4℃
  • 맑음거제 29.0℃
기상청 제공

[경기초대석] 김이환 이영미술관 관장

 

 

 

 

 

 

과거와 현재 잇는 미술의 역사 그린다

 

‘미(美)의 감정에 충실한 작품속에 우리의 정체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영미술관 김이환 관장(74)은 현재의 시간을 말하듯 미술에 관한 그의 철학을 시간속에 담아내고 있다.

일흔넷의 나이속에 미술에 대한 열정과 사랑, 우정, 그리고 전통을 잇고자하는 삶의 진실까지도 최근 개관한 이영미술관 곳곳에 배어있다.

잔디하나, 계단하나, 나무한그루에도 그의 미술에 대한 사랑은 뭍히지 않고 하나로 조화롭게 진정한 미를 쌓아간다. 김이환 관장은 “우리의 혼이 곧 우리의 독창성이자 고유성”이라 말한다.

그가 운영하는 ‘이영미술관’에는 내고 박생광 화백의 작품으로부터 작가 김아타, 김현철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명작들이 전시돼 있다.

미의 감정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그 안에 변하지 않는 우리 색과 혼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게 만드는 현장이며 한국미술의 현장이다.

개관 소감을 묻는데 그는 이렇게 밝혔다.

‘다시 수유리에서였다. “제 형편껏 해보겠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싶은대로 한번 해보시지요” 내고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가만히 건너다 보았다. 내고 일흔넷 나는 마흔셋이었다’

민족혼의 화가 내고(乃古) 박생광(1904~85) 화백 작품의 최대 소장처로 잘 알려져 있는 ‘이영미술관’은 그렇게 시작됐다.

2001년 용인 기흥읍에 위치한 한 양돈장을 개조한 건물에서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미술작품을 전시해온 미술관은 신축 도로가 미술관 부지를 통과하면서 안타깝게 문을 닫아야만 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미술의 역사 속에 화려하진 않지만 나름의 역할을 해내던 미술관은 1년여 간의 휴관.

짧지만 긴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어느덧 열정의 근원지에 대한 간절한 회귀본능을 일으켰으며 그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 미술관이 수원과 용인을 잇는 가교처럼 지난 6월 2일 영통신시가지 입구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제2의 도약의 꿈을 품고 나래짓을 하고 있다. ‘미에 대한 열망처럼…’

미술관은 우리 전통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던 그간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작가 김아타, 한용진, 김현철 등 현대미술까지 아우르는 작품들을 통해 우리 미술계의 미래를 보여주려 노력한다. 기획전·초대전 등을 통해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는가 하면, 한국 미술사의 업적을 심층적으로 연구하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노력도 잊지 않는다.

김 관장은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고 열린 공간으로서 관람객들을 맞이하겠다”는 말로 미술과 미술관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정을 보였다.

그의 마음만큼이나 초여름 햇살이 유난히도 따가웠던 6월의 어느날 예술과 함께한 그의 삶과 작가 박생광, 전혁림과의 만남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미술개관전에 찾은 이영미술관에서 밀집모자를 쓰고 세세히 미술관 안팎을 신경쓰는 모습을 뵌 적이 있다. 그때 느꼈던 열정과 다사로움은 이영미술관의 다른 모습일지 모르겠다.

 

 

“色 없다면 예술 혼이 없는것이죠”
 

 

   
▲ 김이환 이영미술관 관장

 

 

◇미술관을 건립하게 된 연유는 무엇입니까?
이 미술관은 박생광 화가와의 인연을 뗄레야 뗄 수 없다. 내가 처음 봤던 내고의 그림은 강렬히 마음을 이끄는 것이 있었다. 그후 도선사를 오르내리며 그를 만날 수 있었고 작은 내고와의 인연과 개인적으로 친밀감은 미술에 대한 새로운 열정의 문을 열어주었다.

 

이 미술관은 박생광 화가와의 인연을 뗄레야 뗄 수 없다. 내가 처음 봤던 내고의 그림은 강렬히 마음을 이끄는 것이 있었다. 그후 도선사를 오르내리며 그를 만날 수 있었고 작은 내고와의 인연과 개인적으로 친밀감은 미술에 대한 새로운 열정의 문을 열어주었다.

 

어느 날 내고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고 그 그림을 후학들이 봤으면 좋겠다’며 부탁을 해는데…. ‘수유리 가는 길’이라는 책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그때 나는 선뜻 “제 형편껏 해보겠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싶은대로 한번 해보시지요”라고 말을 했고 작품이 한 점, 두 점씩 손에 모이게 됐다. 또 그의 작품들을 여러사람들과 함께 즐기고자 하는 마음이 미술관의 문을 활짝 열게 되는 계기라면 계가가 아닐른지요.

 

◇전혁림 작가의 작품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100여점이 훨씬 넘는 것 같다. 전혁림의 작품은 먼지 하나가 우주일 수 있고 눈에 보일 듯 말 듯 한 먼지 속에서 우주를 발견할 때도 있다.
언젠가 “생광이는 도와주고 나는 안도와 줄 거야?”라고 말씀을 하시적이 있다. 개인적인 인연이 시작이다. 그들의 인품이 작품을 넘어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로 형성됐고 작품의 수를 늘리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박생광 화백과 전혁림 화백의 작품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박생광 화가는 동양화의 기법을 사용해 종이나 비단에 오방색과 같이 화려한 색을 써 작품을 만드는가 하면, 전혁림 화가는 전통적 기법을 쓰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오일 캔버스에 우리내 삶의 의미를 투영시킨다. 무엇보다 두 분의 작품 모두 우리의 색감을 느끼게 한다. 박생광 화가는 붉은색 투성이, 전혁림 화가는 푸른색 투성이다.

 

우리 민족이 ‘백의 민족’이라 불리게 된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다. 색동적고리, 오색 떡, 신부의 연지곤지, 의상, 꽃상여 등을 보면 그리 화려할 수가 없다. 박생광 화가의 작품은 한쪽으로 편향됐던 색의 세계에서 고유색을 찾아 보여줬다 할 수 있다.
전혁림은 진취적인 여름을 드러내는 푸른 색으로 부터 고유색을 보여준다. 색이 없다는 것은 예술혼이 없는 것이다. 그들의 작품에는 혼이 담겨 있다.

 

◇작품·작가 선정하는 기준이 있다면?
젊은 작가 김현철의 비디오, 김아타의 사진 작품들에는 우리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고 본다. 정체성과 미의 감정에 충실한 작품이 좋다. 독창성과 고유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험정신이 내재된 작품을 우수하게 평가한다.
과거 작품 소장에는 나와 아내의 의견이 크게 반영됐다면 이제는 부관장 격을 맡고 있는 셋째 딸의 몫이 크다. 첫째 딸은 한국화, 둘째는 조각, 셋째는 미술사, 넷째는 교육홍보, 다섯째는 조각을 공부했다. 감사하게도 다섯 딸 모두 미술에 관한 공부를 했으니 앞으로는 딸들의 노력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미술관 운영을 위해 와세다 대학에서 미학을 공부하신 걸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 미술관 운영에 관한 과정, 지식, 풍토는 미국, 프랑스, 영국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일본 제도를 거의 따르고 있기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에 일본을 통해 세계를 보려했던 것 같다. 그 이유 말고도 당시 박생광 선생께서 일본에서 계속 작품활동을 하고 계셨다.
영어가 짧은 대신 공부하고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 일본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불편없이 공부할 수 있다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지역 미술관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보는가?
지역의 미술관은 ‘열린 미술관’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지역 작가들의 문을 열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기지역에 미술관련 대학만 10여 개 연간 2천여명의 미술인이 배출된다.
이영미술관의 경우는 ‘새로운 경기 상상전’을 통해 대학 간의 정보교류에 힘쓰고 있다. 사생대회 등을 통해 어린이 교육에도 힘쓰는가 하면, 가을에는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의 전시를 열고 있다.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 시점에서 앞으로 이영미술관이 가고자 하는 길은?
거창하게 말 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이전과 같이 박생광 화백과 함께 할 것이며 현대 사조에 맞게 젊은 작가를 지원하고 지역 미술계를 위해 힘 쓸 예정이다.
화성, 수원, 용인, 성남 인구를 중심으로 작가들과 주민들께 사랑받는 미술관이 됐으면 한다. 또 수준 높은 작품들을 많은 이들과 함께 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김이환 이영미술관 관장은 > > >
1952~1955 진주농림고등학교
1955~1960 부산대학교 법과대학
1967~1969 서울대학교행정대학원 도시및지역계획학 석사
1995~1996 일본 와세다대학 대학원 미술사 1년 수학
1972~1978 국무총리실 제4기획조정관
1978~1986 효성그룹 효성개발, 원미섬유 대표이사사장
1988~1994 럭키금성그룹 희성관광개발 대표이사사장
1999~ [現]이영미술관 관장
일본 와세다대 미술사학회 회원
일본 메이지 미술사학회 회원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