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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커뮤니케이션즈 컴퍼니 함미자 대표

삶의 은퇴는 없어요..또 다른 시작일뿐이죠
주부역할 하며 외국계 기업서 사회적 역량 과시
35년동안 쌓은 지식·경험 바탕 새로운 영역 구축

 

 

은퇴후 제2의 삶을 꽃 피우는 그녀

여성은 어떻게 나이 들어가는가?

대부분의 30·40대 여성들은 ‘가정에 충실한 어머니가 될 것인가, 일에 충실한 성공여성이 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는 한편 출산, 육아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다.

50대는 남편과 자식을 보살피는 것 또는 그간의 사회생활을 내려놓는 동시에 허무하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게 되고, 60대에 이르러서는 ‘아줌마’라는 슬픈 이름도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님을 느끼고 노년을 맞는 것이다.

은퇴 여성의 노동력 감소는 당연시 돼왔으며, 요즘 같은 경기 침체기에는 여성이 더 큰 타격을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은은한 향기를 머금은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이가 있다.

은퇴 후 인생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ABC 커뮤니케이션즈 컴퍼니(ABC Communications Company) 함미자(59) 대표를 만나 그간의 행보와 은퇴 여성으로써의 삶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눠봤다.

함미자 대표는 36년 간 아내이자 어머니, 며느리, 사회인으로 일인다역을 충실히 해왔다.

대학 3학년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 조금 이른(?) 결혼을 한 그는 1972년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가정에 재정적인 힘을 보태고 제가 받은 교육을 바탕으로 사회에 참여해 부가가치를 더하고 싶었습니다. 당시만해도 여성 취업이 오늘날만큼 활발하지 않았지만 열정은 시대의 흐름도 거슬러오르게 하더군요. 첫 직장에서 남직원들 초봉의 세 배를 받으며 출발했으니까요.”

그는 외국계 기업인 시카고 은행(The First National Bank of Chicago)과 싱가포르 국제은행(International Bank of Singapore, 현 Development Bank of Singapore)의 서울지점에서 대출심사 분야를 맡아 22년 간 우리나라 대기업들과 중소기업, 국내 금융기관과 국제금융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해왔다.

그 후 1993년부터 2006년까지는 국제금융기구인 아시아개발은행(Asian Development Bank)에서 각국의 경제개발, 기술공여, 지도자훈련 등을 위한 프로젝트를 디자인하고 집행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아시아개발은행에 입사했고, 여성으로써는 최초 대출심사 담당과 부지점장직을 맡아 늘 ‘최초’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지만 어려움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함 대표는 “아시아개발은행 동티모르 사무소장으로 부임했을 때 일이에요. 우리는 오지에 전기, 수도, 도로를 개설해주고 태평양 국가들의 지도자 훈련을 위한 프로젝트를 집행하고 있었지요. 그때 동티모르에서 폭동이 일어났어요. 유엔군 막사와 숙소를 오가며 피난생활을 해야만 했지요. 가족들과는 연락이 두절되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전세비행기 편으로 무사히 호주로 이동을 할 수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어려운 이들을 위해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됐지요.”라며 아찔했던 때를 회상했다.

“물론 일을 하면서 각국의 고위직과 하위직 간부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을 때 일하는 보람을 느끼기도 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현지 주민들이 까맣고 여윈 손을 내밀어 평생 처음 전기를 쓰게 됐다며 눈물을 글썽일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것이 제가 늘 감사하며 사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라며 나누는 삶이 중요성을 깨달으며 산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적 지위를 얻어가는 만큼 가정과 육아, 제도와 문화적 한계와 맞부딪혀야 했고 시간, 자신과의 싸움을 딛고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두 딸을 키우는 일과 직장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시보모님과 친정부모님, 남편과 아이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해낼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저는 외국계 기업에서 출발해 국제금융기구에서 ‘업무능력으로 승부’하는 환경 속에서 일해왔습니다만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들에게 여성의 결혼과 육아에 대한 이해와 지원, 기혼자에 대한 차별대우, 불공정한 처우를 없애는 등의 제도적인 지원이 절실합니다.”

35년을 일해온 그가 은퇴 후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통역 봉사활동, 서적 번역, 강의 활동 등 더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휴식의 시간을 갖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함 대표는 “직장에서 은퇴를 했지만 삶에 있어서 은퇴는 없지요. 수원청소년문화센터 국제교류팀과 인연이 닿아 외국인들의 통역 봉사를 하고 있고, 영어 강의도 나가고 있어요. 앞으로는 그동안 쌓아온 경험, 지식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중소기업의 수출과 수입, 금융관계 상담과 서류 작성 등의 일을 하는데 도전하고 싶습니다.”라며 쉼 없이 앞으로의 계획을 풀어놓았다.

끊임 없이 도전하는 삶.

그에게서는 세월 속에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는 ‘여성’이 아닌, 시간을 거슬러 자신의 역사를 당당히 만들어나가는 ‘함·미·자’ 그대로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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