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군정기에 창설된 조선경비대가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대한민국 국군’으로 출발한지 60년째가 된다. 국군의 창설은 일제 식민지 시대를 청산하고 국방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컸다. 육·해군 창설 1년 후인 1949년 10월 1일 공군이 창설되면서 대한민국 국군은 3군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이는 여느 신생 독립국가에서는 보기 드문 급진적 건군이었다.
그러나 건군 과정에 참여한 이른 바 건군 주역들 사이에서는 이합집산과 갈등이 아주 없지 않았다. 1907년 7월 24일 한일신협약에 따라 7월 31일 조선 군대가 해산되고, 1910년 8월 22일 한일합방과 함께 조선인의 일본군 입대가 가속화되는데 광복 직전까지 일본군 군사경력자는 약 43만명에 달했다. 이들 가운데 광복 후 남한으로 돌아온 군사경력자는 13만5천명에 불과했다. 여기에는 만주, 시베리아, 중국대륙에서 활동하던 광복군과 중국군 출신자 3만5천명과 일제에 의해 강제 징병되었다가 남한으로 귀환한 10만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군사경력자들은 미구에 있을 건국과 건군, 그리고 당장 시급한 치안 유지를 위해 군사단체를 조직하게 되는데 1945년 11월 미 군정청에 등록된 정당·사회·군사단체는 무려 205개에 달하였다. 이 가운데 군사단체는 30개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도 좌·우로 대립하는 바람에 분열과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발행한 ‘군사(軍史)’ 최근호에 따르면 좌파 성향 단체로는 학병출신의 이혁기가 이끄는 조선국군준비대, 왕익권이 주도하는 조선학병동맹이 있었고, 우파 성향 단체로는 이응준 등 일본 육사 출신의 계림회가 이끄는 조선임시군사위원회와 학병단이 있었다. 이밖에 임시 정부의 유동열이 이끄는 대한국군준비위원회, 조성환이 총재로 있는 대한민국군사후원회, 좌파 성향의 김원봉이 주도한 중앙육군사관학교, 오정방이 이끄는 육군예비사관학교가 있었다.
공과의 평가는 사가(史家)의 몫이다. 막강 국군의 60년이 자랑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