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하면 떠오르는 것이 단풍, 국화, 갈대다. 단풍은 단풍대로, 국화는 국화대로 멋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지만 갈대 또한 이에 뒤질 존재가 아니다.
신라 나밀왕 때 왜나라에 볼모로 끌려간 셋째 왕자 미해(美海)는 그의 형 눌지왕(訥祗王)이 즉위할 때까지 돌아 오지 못했다. 즉위한지 10년이 돼도 동생 때문에 슬퍼하는 것을 본 충신 김제상은 왜국에 거짓 귀순하여 미해를 탈출시켰다.
이같은 사실을 안 왜왕은 대노하여 제상의 발다닥 가죽을 벗기고, 갈대를 벤 그루터기 위를 걷게 하였다. 하지만 김제상을 굴복시키지 못한 왜왕은 목도에서 그를 불태워 죽이고 말았다. 지금도 갈대의 밑둥이가 붉으스레한 것은 김제상이 흘린 혈흔 탓이라고 전해진다.
비록 육신의 생명은 끊어졌지만 나라와 국왕을 위해 충절을 지킨 제상이야말로 충신의 본보기라 할 것이다. 삼국사기에 이런 기사가 있다. 고구려 봉상왕(烽上王)이 후산 북쪽으로 사냥하러 갈 때 국상(國相) 창조리(倉助利)는 여러 신하들에게 자기와 뜻이 같은 사람은 자기가 하는 대로 따라 하라면서 갈대 잎을 뜯어 관에 꽂았다. 이것을 본 신하들이 갈대잎을 뜯어 모자에 꽂는 것은 본 창조리는 자기와 뜻이 같음을 확인하고, 왕을 폐한 뒤 을불(乙弗)을 왕위에 오르게 하니, 그가 다름아닌 미천왕(美川王)이다.
이 때의 갈대 잎은 동의의 표지였다. 갈대는 약재와 생활 도구를 만드는 소재로 쓰여졌다. 갈대 꽃을 노화(蘆花)라 하고, 갈대 뿌리를 노근(蘆根)이라하는데 노화는 토사와 곽란에 효험이 있고, 노근은 식중독과 성병 치료에 신효했다고 전해진다.
유교에서는 갈대꽃을 아름답고 어진 여인에 비유한다. 비록 생김새는 약하지만 곧고 굳어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겨내는 의지를 갈대에 비유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갈대를 애욕 단절의 상징으로 친다. 수도승에게 애욕은 큰 적이므로 갈대를 베듯이 잘라버리라고 가르친다. 갈대를 보면 생각나는 것이 김소월의 “엄나야 누나야 강변 살자/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이다. 갈대는 아름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