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입부(笠父), 호는 혜원(蕙園).
1758년 화원가문 신한평의 장남으로 태어나 풍속화를 잘 그렸다고 알려진 인물. 이것이 신윤복 이력의 전부이다. 김홍도와 함께 풍속화의 쌍벽을 이룬 인물인데 개인적인 삶이나 사망시기조차 기록에 없다.
그를 수긍한다면 김홍도는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반면에 신윤복은 당대에 실력은 있되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역사적 기록이 전무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가 도화서에서 나올 때 이미 권력과 조정, 유교사회로부터 소외된 것이다. 그들이 흔히 누린 생활풍류였지만 에로티시즘과 세상을 관조하는 풍자가 너무 파격적이고 앞서가긴 했다. 후일 그의 삶이 미궁 속으로 빠진 이유라면 이유다.
이정명작가의 소설(바람의 화원)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이 같은 역사적 미스터리에 작가적 상상력을 불어넣어 신윤복이 여자라는 설정을 만들어 화제가 되고 있는데 다음 달 13일 개봉되는 영화 ‘미인도’ 역시 이 설정을 그대로 차용, 여배우가 신윤복 역을 맡고 있다.
과연 팩션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신윤복이 남장여자였다는 가설에 이어 1794년 일본에서 활동한 ‘도슈사이 샤라쿠’ 였다는 가설로 장편소설(색 샤라쿠)이 출간됐다.
그리고 이영희(한일비교문화연구소장)의 ‘또 하나의 샤라쿠’ 라는 책에서는 김홍도와 샤라쿠가 동일 인물이었다고 주장한데 이어 이번에는 신윤복이 소설의 옷을 입고 샤라쿠로 재탄생한 것이다.
샤라쿠는 일본 에도(현 도쿄)에서 1794년 단 10개월 동안 100여 점이 넘는 풍속 판화를 남기고 잠적한 전설적인 화가다. 하지만 신윤복은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으로 남자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설정들이 판을 치는 걸까?
그것은 작가적 상상력의 발로이지만 그 이면에 신윤복이 바람처럼 사라진데다 삶이 베일에 가려졌던 때문이리라. 결국 그의 삶은 오늘날 수많은 예술가들이 빠질 수밖에 없는 상상력의 원천이 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