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은 ‘시인의 날’이었다. 1908년 11월 1일 육당 최남선이 자작시 ‘海에게서 少年에게’를 문예지 ‘소년’에 발표한 것이 우리나라 근대시의 효시였다. 이날을 기려 시인의 날로 정한 것인데 올해가 꼭 100년이 된다. 서울에서는 ‘시인만세’라는 주제를 내건 기념행사가 있었고, 지방에서도 자축 모임이 있었다. 경기도에서는 경기시인협회(회장 임병호) 주최로 수원만석공원 안에 있는 슬기샘도서관 강당에서 시인의 날 기념 및 한국시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경기시인협회는 도내에 터를 잡고 시작(詩作)활동을 하는 대표적 시인 단체로서 회원수가 가장 많고 기반이 든든할 뿐아니라 새내기 시인의 산실로도 인정받고 있다. 100년 전 11월 1일 당시 우리나라에는 최남선이 유일한 근대시인이었고, 소설가로는 춘원 이광수 뿐이었다. 이들은 1900년 말까지 양강으로 존재하면서 우리나라 문단을 대표했다. 3·1운동을 전후해 ‘창조’, ‘폐허’, ‘백조’ 등의 동인지가 잇따라 창간되면서 수원출신의 나혜석을 비롯해 홍사용(용인), 이희승(개풍), 김광균(개성), 박두진(안성), 김상용과 김오남(연천), 김광주(수원), 박팔양(화성) 등 경기도 출신의 시인들이 대거 등장했고, 경성(서울)과 지방에서도 많은 시인들이 등단했다. 광복을 전후해 조병화(안성), 한상억(강화), 이흥우(부천), 윤부현과 홍명희(인천), 신동준과 최병구(용인), 김대규(안양), 임병호(수원) 등 이름만 대도 알만한 시인들이 대거 등단하면서 한국 시단의 부흥기를 이끌었다. 조금 해묵은 통계지만 2005년 현재 한국문인협회에 등록된 시인은 3284명인데 경기도에 거주하면서 창작활동을 하는 시인이 679명(20.6%)이었다. 이는 1908년 1명(최남선)이던 시인이 679배로 늘어난 셈인데 여기에 지난 3년 간의 등단 시인과 재야시인, 민예총 시인, 북한 시인까지 합친다면 1만이 될지 2만이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어느새 시인대국이되고 말았다. 시인이 많다는 것은 시를 사랑하는 수요자(국민)가 많다는 반증이다. 시인만세에 더해 ‘시인만만세’를 불러도 지나침이 아닐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