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을 그릇되게 한쪽으로 치우쳐 바라보는 것이 편견이다. 편견은 주로 자신만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할 때가 많다. 이 주관적 생각은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어린시절에 그가 속한 집단으로부터 자기도 모르게 습득된다는 것이다. 지역적 편견과 인종적 편견 등이 그렇다. 편견이 위험천만한 것은 올바른 정보가 주어져도 이미 비딱하게 고정된 시선은 편견을 강화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
편견, 그 따가운 시선만이라면 그리 문제될 것도 없다. 하지만 이 편견이란 것에 항상 따라붙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있으니 바로 차별이다.
마치 쌍둥이라도 되는 양, 편견 옆에 늘 차별이 있었다. 흑인과 유대인의 경우처럼 지역차별과 인종차별이 그 좋은 예다.
우리 나라에서도 지역차별이 엄연히 존재했었고 외국인들에게 차별대우를 한 것도 사실이다. 이는 다른 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본에서 우리 동포들이 받는 차별이나 미국사회에서 받는 흑인들의 차별적 대우도 편견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1992년에 일어난 LA흑인폭동도 인종차별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바야흐로 글로벌시대 지구촌이다. 보다 많은 문화교류와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보다 객관화되긴 했다. 편견과 차별이 많이 희석되고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미국의 44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오늘(현지시간) 실시된다. 현재 판세로는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 후보가 공화당 존 매케인 대통령 후보를 앞지르고 있어 당선이 유력하다한다. 미국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출현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많은 지구촌 사람들이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과연 막판까지 미국민의 편견과 차별을 잠재울 수 있을지 아니면 어떤 변수가 생길지 온 세계의 시선이 거기에 모였다.
편견과 차별이 없는 사회. 이미 세계는 그러한 사회를 준비 중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