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에는 늘 시작과 끝이 있게 마련이다. 그 일이란 것이 자신이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를 때도 있다. 이를 중도에 알아챘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예기치 않게 터진 문제들을 때맞춰 바룰 수 있으니 말이다. 애초에 잘못된 설정이었든,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든, 일이 순조롭게 나아가지 못하는 데는 그 일의 시작보다 과정이 문제일 경우가 더 많다. 특히 일을 추진하면서 직간접으로 끼게 된 조급증이 그 대부분이다. 우리는 무슨 일이건 시일을 앞당겨서 결과를 도출해내려고 한다. 그러다 뜻하지 않은 일이 터지거나 그런 결과를 맞게 된다. 당장 경계해야할 우리 나라 사람들만의 ‘빨리빨리’ 문화다. 이는 느긋한 외국인들의 탄탄한 기본을 저버린 대내외적인 불신을 부르기도 한다.
학문이나 진리의 높은 경지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자기가 아래서부터 시작하지 않고서는 그 경지의 참맛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중용(中庸) 제15장에 보면 ‘군자의 도는 비유컨대 먼 곳을 감에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출발함과 같고 높은 곳에 오름에는 반드시 낮은 곳에서 출발함과 같다’라는 글이 있다. 그리고 맹자(孟子) 진심편(盡心篇)에서도 ‘군자가 도에 뜻을 둘 때 아래서부터 수양을 쌓지 않으면 높은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君子志於道也 不成章不達)’라고 말한다. 글쎄, 불경의 일화에 어떤 사람이 남의 삼층 정자를 보고 샘이 나서 목수를 불러 일층과 이층은 짓지 말고 아름다운 삼층만 지으라고 했다는데 과연 온전한 정자를 지을 수 있었을까. 현재 우리 나라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등 모든 것이 급진적으로 달려온, 그래서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꼬여 있는 상태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라는 우리 나라 속담처럼 모든 일은 순서에 맞게 기본이 되는 것부터 이루어 나가는 그런 지혜와 여유가 한층 요구되는 시점이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던 등고자비(登高自卑)를 되새겨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