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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부보상

이창식 주필

조선 시대의 부보상(負褓商)은 태조와 장돌뱅이 백원달의 만남을 통해 조선의 상권을 장악하는 대상인 집단이 되고, 국가로부터 인정받는 신분 상승의 기회도 잡았다. 1392년 7월 17일 고려왕에 등극한 이성계는 이듬해 2월 15일 국호를 조선으로 바꾸고 나서 백원달을 불렀다. 고려 장군으로 여진전투와 황산전투를 펼칠 때 부상당한 자신을 구해준 백원달의 도움이 너무 고마워서였다.

 

이성계는 소원을 말하라 하였으나 백원달은 할 바를 했다며 사양했다. 태조가 거듭 소원을 말하라고 간청하자 전국 팔도에서 고생하고 있는 부보상을 도와 달라고 아뢰었다. 이에 태조는 ‘유아부보상지인장(唯我負褓商之印章)’이라 새긴 옥도장을 내리고 조선의 상권을 부여하면서 부보상이 질병에 걸리면 병칙구료(病則救療·병이나면 치료)하고, 죽으면 사칙매장(死則埋葬·죽으면 매장)하는 팔자칙교(八字勅敎)를 내렸다. 논공행상치고는 매우 격이 높았다.

 

이후 80명에 불과하던 부보상이 수백명으로 늘어나게 되고, 조선 경제는 그들 손아귀에 의해 쥐락펴락하였다. 일부의 전횡이 없지 않았으나 그들은 망언을 하지 말것(勿妄言), 행패를 부리지 말며(勿悖行), 음탕한 짓을 해서는 안되고(勿淫亂), 도둑질을 해서는 안된다(勿盜賊)의 4대 계명을 철저히 지켰다. 국익을 위해 상병(商兵) 역할도 하고 봉사도 많이했다.

 

신분적으론 천민이었지만 정신과 행동면에서는 양반 저리 가라였다. 부보상이란 물건을 지게에 지고 팔러다니는 남자행상(등짐장수) 즉 부상과 물건을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팔러다니는 여자행상(봇짐장수) 즉 보상을 합친 말이다. 그런데 1925년 조선총독부가 남존여비 사상을 뜯어 고친다며 남자행상을 나타내는 부(負)와 여자행상을 나타내는 보(褓)를 앞 뒤로 바꾸어 보부상으로 만들었다.

 

마치 수원의 ‘화성(華城)’을 수원성으로 날조한 것과 같다. 우리말사전에도 보부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런 왜곡 용어가 어디 한 둘이겠는가마는 보부상이 아니라 본디의 이름인 부보상으로 바르게 부르고, 고쳐 써야할 것이다. 그래야 일제의 잔재 하나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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