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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화장실 문화

이창식 주필

화장실을 들여다 보면 그 나라 또는 그 가정의 문화수준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화장실 문화가 급변한 것은 1900년대 초반 이후부터였다. 혐오 대상이던 공중화장실을 아름다운 화장실로 바꾸는데 앞장 선 곳이 수원이고, 그 일을 해낸 사람이 전 수원시장 심재덕씨다. 그의 이름 석자는 화장실 문화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우리는 광복 전후까지 화장실을 측간(?間) 또는 뒷간이라고 불렀다. 측(?)자가 뒷간측자인데서 알 수 있듯이 화장실은 후미진 뒷켠에 있는 더러운 공간으로 여겼다. 일제 때 공중변소가 생기면서 변소(便所)라는 용어가 등장했는데 지금도 노년층에서는 여전히 쓰고 있다. 사찰에서는 해우소(解憂所)라고 하는데 이는 근심을 덜어내는 곳이라는 뜻이니 멋진 이름이다.

오늘날 공중화장실말고는 모든 화장실이 집안에 들어 앉았다. 그것도 뒷켠이 아니라 앞켠이거나 방안 차지를 하고 있다. 이제 화장실은 혐오의 공간이 아니라 미화의 공간이 됐다. 그런데 프랑스혁명이 화장실 때문에 일어났다는 가설이 있다. 로마 시대에는 석조 화장실과 하수시설이 있었으나 로마가 멸망하고 나서는 서유럽에 제대로 된 화장실이 없었다고 한다. 공중화장실이 있었지만 워낙 화장실 수가 적다보니 거리로 오물이 넘쳐 악취가 진동할 수밖에 없었다. 파리 시민들은 요강 같은 용기에 용변을 보고 아침이 되면 창밖 도로에 버려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고 한다. 당시 루이 14세는 그가 살고 있던 루브르 궁전까지 악취가 번지자 베르사유에 새 궁전을 짓고 이사를 하고 말았다. 결국 왕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면서 프랑스혁명 촉발의 한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진위는 확인할 수 없지만 있을 법한 가설이다. 얼마전 강원도 동해시 해변가에 있는 공중화장실을 이용한 적이 있는데 화장실 벽면에 행자부장관 대상(大賞) 상패가 붙어 있었다. 천장에 유리를 달아 하늘이 보이고, 바다에 면한 창에서는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자연 속의 해우, 그것은 잠시의 낭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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