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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향토사 사랑

이창식 주필

서재, 서당, 서원, 향교, 정사(精舍), 사학(四學) 등은 조선 시대의 사설 교육기관이었고 학력이 뛰어나면 최고 학부인 성균관에 진학할 수 있었다. 서당과 서재는 동네마다 있어서 접근하기 쉬웠다. 서원은 조선 중기부터 보급된 것으로 선현을 제사하는 사(祠)와 자제를 교육하는 재(齋)가 합하여 설립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향교는 지방교육기관으로 문묘(文廟)에 부속되어 있었고, 일명 교궁(校宮), 재궁(齋宮)이라고도 불렀다. 특히 세종은 서원을 장려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서원의 폐해가 늘어나자 대원군은 1864년(고종 1) 서원에 대한 특권을 철폐하고 이듬해 5월 세상에 사표(師表)가 될 47개의 서원만 남겨 놓고 모두 없었다.

지방에는 향리의 유지들이 공동으로 세운 학구당이란게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전라남도 담양군 수북면 오정리에 있는 수북학구당(水北學求堂)이다. 이 학구당은 1582년(선조 15) 산라(山羅) 계원인 진경집을 비롯한 16명이 향리의 아동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건립했다. 하지만 세월과 함께 건물이 노후해 1708년(숙정 34)에 유림인 김상관을 비롯한 19명이 중론을 모아 원래 자리에서 200보 떨어진 곳에 중건했으나 또 다시 278년이 지나자 본당의 동량이 낡아 무너질 위험이 있어서 1966년에 우종원을 비롯한 5명의 유지가 발의하여 본당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 번의 이건(移建)과 한차례의 중건(重建)을 거치기는 했으나 창건 이래 586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담양향토사연구회가 한자로 기록한 당지(堂誌)를 우리말 번역본으로 발간했다. 이에 따르면 수북하구당을 거쳐간 문하생이 2천명, 문과 6명, 무과 2명이 과거에 급제하고, 생원, 진사, 음사 등 크고 작은 벼슬에 오늘 이가 수두룩하다. 일개 촌락의 유지들이 설립한 학구당의 맥을 600년 가까이 이어온 것도 놀랍지만 그들의 향토사 인식과 사랑은 더욱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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