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인간과 신화,
판타지의 교집합을 통해 인식에 대한 비등점을 관찰하고자 한다. 현실이 마법처럼 존재하고 그 마법은 이루어지며, 신화에 대한 인식은 마법을 풀어나가는 안내자가 될 것이며, 이러한 연역을 통해 인식에 대한 부적인 정합성(self-coherent)과 그것에 반(反)하는 논리적 모순을 유추해내려는 것이다.
오늘은 서울 관훈동에 있는 조각가 정영훈의 작업실을 찾아간다.
대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은 그의 작업실에는 일반적인 조각 작업의 공구들 대신 컴퓨터와 책들 그리고 몇 개의 모형 작품들만 보인다. 그러한 작업실 풍경을 둘러보며 과연 이곳에서 어떤 조각품이 나올까하는 의구심이 생겼지만 컴퓨터를 통해본 그의 작품 세계는 실로 광대하고 다채로우며 새로운 개념의 조각세계를 열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정 작가의 작품은 스크린의 설치나 모니터를 통해 입체를 표현하고 이것은 Interactive art(상호 작용하는)로써 나타난다. 작품에 보이고 있는 생물체(꽃, 나비, 날개, 호랑이 등)들은 관객의 움직임에 반응하면서 존재와 인식 그리고 판타지 즉 몽환적인 컨셉을 통해 인간의 역사나 신화 등에 대한 비등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정 작가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하지 않는다. 현실과 신화, 판타지의 경계와 그러한 첨예한 경계에서의 낯선 현상에 주목할 뿐이다. 역사의 순환이 없는(일 방향, 판타지나 신화처럼 운명에 대한 순환이 없음) 서사와 역사의 변화와 혁명 그 사이에서 정 작가의 신화는 탄생한다. 그것은 신화적 스펙터클이며 판타지적 메타포와 영원한 인간의 환상이다.
그의 작업은 신화적 상징과 마법, 비밀을 연상시킨다. 관객이 그의 작품에 대하여 실제로 보거나 느끼는 것은 현실이라고 믿는 부분과 그것이 아닌 것에 대한 희미한 교집합 부분이다.
작가는 인간과 신화, 판타지의 교집합을 통해 인식에 대한 비등점을 관찰하고자 한다. 현실이 마법처럼 존재하고 그 마법은 이루어지며, 신화에 대한 인식은 마법을 풀어나가는 안내자가 될 것이며, 이러한 연역을 통해 인식에 대한 내부적인 정합성(self-coherent)과 그것에 반(反)하는 논리적 모순을 유추해내려는 것이다. 또한 정 작가는 판타지의 세계를 구조적으로 접근한다. 그에게 있어서 판타지는 겉으로 보이는 환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세계이며 인간의 모든 물리적 환경은 판타지의 모방에서 왔다. 즉 상상의 모방인 것이다. 작가는 이제 그러한 흐름을 역행하여 되짚으려고 한다.
정 작가가 하고 있는 작업의 방식이나 접근은 디지털 방법론의 인식체계를 미학적 구조에 대입해서 일치시키려는 것이다. 예술적 Narrative와 Digital Narrative의 통합(Integration)은 현대미술에서의 디지털 미학의 위치를 새로이 가늠해보는 시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정 작가의 이러한 도전은 전문 기술자와 함께 기술 연구 및 개발을 통해 이루어지며 작가의 철학적 사고와 만나 신개념의 조각세계를 구현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 이루어지는 정 작가의 작품들은 너무나 광대하고 다채롭게 나타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The partial Space” 라는 호랑이가 등장하는 작품을 통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호랑이의 등장은 오랜 시간 인간이 확고하다고 믿는 이미지(강함, 남성적, 호랑이 형상)를 차용함으로써 근대적 세계관과 인간의 믿음에 일격을 가하는 것인데 이는 허구적 세계관을 드러내는 시뮬레이션이다.
원이나 타원형의 공간에 관객들이 들어가 스크린에 비치고 있는 가상의 호랑이와 상호작용을 하게 되는 이 작품은 관객이 이 공간에서 장풍(掌風)을 날리는 행위를 통해서 가상의 정체성(호랑이)과 싸우게 된다. 스크린에 비치는 호랑이도 관객에게 공격할 수 있다. 장풍은 동양에서 기(氣)의 행위로서 정신과 육체가 합일하고 교감하는 행위를 나타내는데, 장풍의 기술은 카메라 트래킹 기법이나 3D스캐닝 마그네틱 장비를 이용하고 있으며,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위해 연구 개발 중이라고 한다.
이미지 렌더링(Rendering) 알고리즘은 3차원 실시간 이미지 렌더링 알고리즘으로서 특히 이 작품에서는 전통 한국화의 렌더링 알고리즘을 이용한다. 전통 한국화와 중국화에서 볼 수 있는 표현기법인 먹의 농담과 여백미를 가져오고, 화면의 구성도 화려하지 않은 무채색이며 깊이가 있는 한국화의 여백미를 응용한 것이다. 이러한 제작이 가능하고 재생하기 위해서는 적외선 카메라 트래킹, G Force 7800 GT 이상의 그래픽카드, Pentium4 3.4G 이상의 CPU, 2G 이상의 메모리 등의 장비와 설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렇게 제작된 작품은 설치와 전시를 통해 보여 지고 최종적으로 디지털 네트워크 동물원을 만듦으로써 비로소 작품의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이는 동물들의 일반적인 형상, 습성, 배경, 환경이 아닌 사회적, 도시적 등의 새로운 환경에서 인간과 함께 공존하도록 방목하려는 것인데 공공미술의 설치(입체)를 통해 그런 의도와 가까워지는 것이다.
정영훈 작가의 작품은 입체, 애니메이션, 미디어, 수수께끼, 게임아트, 공공미술 등에서 다양한 객체로 등장하며 때로는 독립적으로 때로는 혼합의 형태로 나타나면서 독특하고 신비스러운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신개념의 조각 혹은 새로운 예술분야의 개척을 위한 작가의 고민과 열정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결코 쉽지만은 않은 예술가의 길. 그러나 언제까지든, 어디까지든 이 길을 이러한 작품 활동을 통해 꾸준히 가고 싶다는 게 정영훈 작가의 꿈인 것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소개했던 다른 조각가들의 작품처럼 정영훈 작가의 작품 또한 지면으로만 소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많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앞으로 소개될 조각가들과 더불어 전시회를 통해 더 가깝게 자세히 소개할 수 있는 날들을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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