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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대한제국 국새 되찾다

국립고궁박물관, 국외반출 문화재환수 일환 작년 12월 구입
1901~1903년 제작 고종황제 친서 등에 사용 직접 소지 추정

 


지금까지 단 1점도 실물이 남아있지 않다고 보고된 조선왕조 임금의 실무용 도장인 국새(國璽)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정종수)은 17일 오전 고궁박물관 회의실에서 고종황제가 사용했던 국새를 공개했다.

이번에 발견된 국새는 국외반출 중요우리문화재에 대한 유물구입을 통한 국외문화재환수의 일환으로 지난해 12월 구입하게 됐다.

특히 고종황제가 친서에 사용한 현존하는 유일한 대한제국기(大韓帝國期)의 국새로, 국사편찬위원회 소장자료에 사진으로만 전해지던 분실된 바로 그 국새인 것으로 조사 결과 밝혀졌다.

국새는 외함(寶錄·보록)이 분실되고 내함(寶筒·보통)만 남아있는데 전체높이 4.8cm, 무게는 794g이다. 손잡이(寶紐보뉴)는 거북형이며, 비단실로 짜여진 끈(寶綬·보수)이 달려있다. 정사각형의 인장면에는 ‘황제어새(皇帝御璽)’라 양각돼 있다.

내함은 황동(黃銅)의 재질로, 2단으로 되어 하단에는 인주(印朱)를 넣을 수 있도록 되어 있고, 그 윗단에 국새를 넣는다. 뚜껑은 네 면을 경사지게 꺾어 마무리 했다. 하단과 뚜껑의 내부는 붉은 비단을 직접 접착해 마무리했으며 국새가 들어가는 상단은 두께 0.5cm의 소나무로 내곽을 만든 뒤 붉은 천을 붙여 마무리했다. 성분 분석결과 거북형손잡이는 은(銀)과 금(金)의 비율이 81:18이며, 몸체(寶身·보신)는 57:41의 비율로 은이 많이 사용되어 손잡이와 몸체가 따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거북형손잡이와 몸체의 나머지 성분은 아연으로 조사됐다.

이번 확인된 국새에 대한 제작기록은 보이지 않으나 “문화각(文華閣)의 옥새와 책문(冊文) 등을 보수하도록 하다”라는 고종실록의 기록(광무5년 11월 16일)으로 미뤄 1901~1903년 사이에 제작돼 1903년에 이태리황제에게 보낸 친서 등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국새는 공문서가 아닌 (공문서에는 ‘대한국새‘, ‘황제지보’ 등이 주로 사용됨) 친서에 주로 사용된 점으로 미뤄 비밀리에 제작돼 고종황제가 직접 소지하고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원래 국새는 상서원(尙書院)에서 관리하는 것이 상례이나, 황제가 이 국새를 직접 소지하고 관리한 점은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이나 긴장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국새 확인의 의의는 국사편찬위원회 소장의 유리원판사진 등으로만 전해져 오던 바로 그 실물이 확인됐다는 것과 국외반출된 우리 중요문화재를 구입을 통해 환수시켰다는 점이다.

또 국새가 찍힌 친서의 내용 중에는 국운이 기울어가는 제국의 황제로서 주변국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절박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어 대한제국기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 점이다.

한편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이 국새에 대해 국가지정문화재(국보) 지정신청과 동시에 적절한 시기에 일반시민들에게 특별공개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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