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영화 70편을 튼다고 하니‘이거 큰일 났구나’ 싶었어요.
10년 사이에 50편을 찍었는데 부끄러운 과거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1년에 5편씩 했으니 얼마나 날치기로 막 찍었겠어요.
그땐 개봉해서 한 번 보고 다시는 본 적이 없는 필름들이에요.
이번에 내가 무슨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는지 봐야 알겠어요.”
한국이 낳은 영화 거장 임권택 감독은 최근 후반작업을 진행한 신작 ‘달빛 길어올리기’를 빼면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부터 ‘천년학’(2006)까지 100편의 영화를 남겼다.
한국영상자료원이 12일부터 10월3일까지 여는 ‘임권택 감독 전작 展’에서는 100편 가운데 필름으로 남아있는 70편이 무료로 상영되며 특히 ‘만다라’(1981)는 디지털 복원판이 처음 공개된다.
영상자료원은 이만희, 김기영, 유현목 등 작고한 감독들의 전작전을 개최한 적은 있지만 생존한 감독의 전 작품을 상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작전을 앞두고 최근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난 임권택 감독은 자신이 연출한 영화 전부를 관객들에게 내놓는다는 것에 대해 쑥스러워했다.
그는 특히 자신의 초기작에 대한 평가가 박했다.
“액션, 사극, 멜로, 코미디 이것저것 많이 해봤어요. 주문이 오면 고르고 자시고 할 것도 없고 닥치는 대로 한 거죠. 시나리오 고쳐가면서요.”
영화 1편을 완성하는데 1년 넘게 걸리기도 하는 요즘 상황으로 보면 1년에 5편꼴로 찍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저도 거짓말 같은데 타이틀 보면 제가 찍었더라고요. 언제까지 한 영화를 끝내겠다고 예정하면 다음 작품은 언제 들어갈지 미리 정하죠. 그런데 스케줄이 엉키고 하면 뒤 작품과 겹치기 연출을 하기도 했어요.”
그는 초기작 50편에 대해 “흥미로운 픽션을 꾸며서 흥행을 시키는 영화로 우리 삶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면서 “그때는 좋은 작품을 찍어서 후세에 남기겠다는 야망은 없었다. 살기 힘든데 싸구려 감독으로서 생활의 방편으로 찍었던 것”이라고 말했다.그래도 이런 작품이 그의 영화세계의 밑거름이 됐음은 당연하다.
임 감독도 “좋은 영화가 됐든 나쁜 영화가 됐든 필사적으로 정신없이 찍었다”면서 “정말 부끄럽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감독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저력 같은 게 그 시대에 쌓인 게 아니겠나 싶다”고 했다.
임 감독은 호적에는 1936년생이지만 실제는 1934년생으로 올해 76세다. 1962년 젊은 나이인 26세에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했지만 그가 자신의 첫 작품으로 생각하는 영화는 따로 있다.
“나이 들면서 6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내가 이런 영화를 찍으면서 내 인생을 소모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함부로 살아서 되겠는가’ 하는 각성을 했죠. 거짓말 좀 그만하고 삶과 닿아있는 영화를 찍자는 생각을 했어요.” 임 감독이 자신의 첫 영화로 꼽은 영화는 1973년작 ‘잡초’다.
자신이 직접 제작까지 맡은 영화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한 여자가 해방과 6.25 전쟁을 지나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찍어야 하는데 그런 재미없는 소재에 누가 돈을 댔겠어요. 제작자가 나서지 않아 직접 제작을 했어요. 흥행에서는 왕창 망했죠. 그래도 한 가지 큰 소득은 있었어요. 임아무개가 흥행작품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지한 영화도 찍는 감독이구나 하는 인식을 영화계에 심어줬다는 거죠.”/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