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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앤아이피플] 문화인 앙쥐 레치아

화가, 사진작가, 영화 제작자…상상의 한계를 허무는 문화인

 

글|권은희기자 keh@kgnews.co.kr  불어통역|송가현 경기창작센터 학예사

 

 

5 626마일, 7시간의 시차, 가장 빠른 교통수단으로도 장장 12시간을 하늘에서 보내야 당도할 수 있는 곳. 먼 나라 프랑스까지의 물리적 거리는 막연하거나 낯선 느낌을 전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에펠탑, 몽마르트르, 센강,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부르델 미술관과 사람들 사이의 심적 거리는 마치 이웃한 듯 가깝다. 그 프랑스 문화의 중심에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작품, 장르를 넘나드는 미술 세계, 상상의 한계를 허무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 이가 있다.

 

화가이자, 사진작가, 영화 제작자로 프랑스 미술계에 큰 반향 일으킨 앙쥐 레치아(Ange Leccia, 58) 르 파비용(Le Pavillon) 레지던시 관장을 만나 그의 미술 이야기, 르 파비용의 운영, 한국과의 교류 프로젝트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르 파비용’을 소개하려면 파리의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를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 파리 16구 알마 마르소(Alma Marceau) 역 근처 윌슨 대통령 거리(avenue du President Wilson)에 있는 팔레 드 도쿄는 1937년 파리 국제 박람회 때 일본관으로 지어졌다. 이후 프랑스 문화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미술 전시관으로 거듭났다. 앙쥐 관장이 지휘권을 잡으면서 미술관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우선 당시에 행정관료가 아닌 작가를 미술관장으로 임명하는 일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고 최초였다. 또 평범하지 않은, 살아있는 창작의 산실이 되기를 바랐던 앙쥐 관장의 운영방침에 따라 생각을 뛰어넘는 작가, 작품이 많이 배출됐다.

 

 

 

작가 고유의 영역·특수성·경계를 허물다

“1980년 프랑스 그르노블(Grenoble)이라는 지역에서 디렉터로 일했다. 그곳의 레지던시는 건물의 층마다 사진, 회화, 조각을 하는 작가들이 나뉘어 있었는데 그 구분을 해체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작가 고유의 영역이나 특수성, 경계를 허물고자 했고 이후 실험과 혼합으로 작품성을 인정받는 유명한 예술가들이 그곳에서 태어났다. 당시 문화부장관이 그 점을 높이 평가해 상을 수상하게 됐고, 팔레 드 도쿄 관장으로 임명되면서 마음껏 운영해보라는 권유를 받게 됐다.”

 

이후 문화부장관이 바뀌고 앙쥐 관장이 팔레 드 도쿄 산하 르 파비용 레지던시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변화는 지속됐다. 르 파비용의 작가들도 한가지 표현을 하기 위해 각기 다른 방식을 사용하고 내 방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게 하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언어도 다르고 아는 사람도 없는 데서 비롯되는 일상의 무료함은 작가가 적극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에너지를 줄 수 없다. 르 파비용은 작가들에게 언어를 배울 시간을 주고, 먹고자 하는 음식의 요리 방법도 가르쳐 주는 등 생활에 밀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 여행을 통해 서로 부딪치고 섞이면서 예술 감성을 풍부하게 한다. 이번 여행지는 한국이다. 작가들이 여행을 통해 겪는 내적 갈등이나 마찰, 문화 충격도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그 문화 충격을 제공하기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그의 작품세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앙쥐 관장은 그림, 사진작가, 영화 등 장르를 넘어선 작업을 하고 있다.

 

“18~20세에 소르본 미술대학에서 미술 전공을 하면서 로마에서 수여하는 ‘프리드롬(Prix de Rome)’을 수상한 바 있다. 순수미술을 전공했지만 철학을 비롯해 비디오, 사진, 영화 등 대중매체 쪽에 흥미를 갖게 됐다. 대학에 다니던 1970년도 당시는 프랑스 68혁명 직후라 자유에 대한 열망을 작품에 담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작가가 자기 생각이나 혹은 아틀리에에 갇혀 자기 세계만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그는 프랑스 현대미술의 형식을 파괴하며 유쾌하고도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를 이뤄냈다. 또 팔레 드 도쿄의 든든한 구심점인 르 파비용(Le Pavillon) 레지던시에서 재능이 뛰어난 신인 예술작가들이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껏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관람객들에게는 장르를 넘나드는 미술 세계를 선사하고 상상의 한계를 허물게 한다.

 

르 파비용, 경기창작센터와 협약
지난해부터는 그의 신념과 열정은 쏟은 르 파비용이 경기창작센터와 협약을 맺고 국제교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 시대 다문화(The Multicultural in Our Times)’라는 타이틀 아래 워크숍, 출판, 전시 등 협업적 연구와 공동 창작을 이어나간다. 지난 5월에는 르 파비용 관계자와 소속 작가들이 내한해 안산을 무대로 이주민 공동체와 다문화적 도시화 과정을 다룬 작품을 꾸미기도 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 작가들의 역량이 부족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또 문화적 토양도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작가들의 작품 퀄리티가 놀라울 만큼 높았다. 현재는 동양 고유의 작품이 인정을 받는 일이 굉장히 어렵지만, 앞으로는 가능하다고 본다. 근접한 미래에는 더욱 가능해질 것이다. 예전에는 뉴욕 중심으로 미술계의 판도가 돌아갔다면 지금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시장이 떠오르고 있다. 시장이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서구의 취향도 변하고 있다. 미술뿐만 아니라 영화에 있어서도 서구 세계의 것은 올드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한국 혹은 동양 고유의 색을 발휘할 때다.”

 

그가 바라보는 한국 혹은 동양의 미술과 작가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프랑스보다 더 생경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화는 국경과 인종을 넘어선 일종의 프렌드십을 형성한다. 그 대상이 낯설고 익숙하지 않을 뿐 현재의 여건에 변화를 주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 앙쥐 관장은 앞으로 한국과의 교류에 대해 “서로 사랑하면 결코 끝은 없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팔레 드 도쿄에서 르 파비용에 이르는 시간 동안 그가 만든 ‘살아 있는 창조의 실험’이 우리나라 미술계에도 끊임없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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