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7 (금)

  • 구름많음동두천 22.4℃
  • 구름많음강릉 23.7℃
  • 맑음서울 24.0℃
  • 구름많음대전 24.7℃
  • 구름많음대구 23.5℃
  • 구름조금울산 24.7℃
  • 구름많음광주 25.8℃
  • 구름조금부산 27.9℃
  • 구름조금고창 26.8℃
  • 구름조금제주 27.7℃
  • 구름조금강화 23.1℃
  • 구름많음보은 23.4℃
  • 구름많음금산 24.8℃
  • 구름많음강진군 25.9℃
  • 구름많음경주시 24.7℃
  • 맑음거제 25.1℃
기상청 제공

[Culture]‘사랑’은 내 예술세계의 모티브 '심영철 교수'

역동적 움직임·음악적 요소들 작품 속에 투영
주전자에 붙은 석고를 떼어내며 정관모 교수의 조각혼 이해

 

글·사진ㅣ민경태기자 mkt@kgnews.co.kr

“작품의 메시지는 사랑입니다. 83년 첫 개인전 빛의 단계적 표상전부터 이제까지 개인전의 모든 작품의 이야기는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성의 사랑은 물론 부모와 자식, 가족과 가족, 사회와 사회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술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순박함. 어찌보면 이 단어들은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수원대학교 미술대학 조형예술학부 심영철 교수에게는 예술에 대한 깊은 열정과 그녀가 가지고 있는 소녀같은 순박함이 엿보였다. 이름에서 남성의 이미지가 묻어나지만 그는 패셔너블과 인텔리가 묻어나는 여 교수이다.

그는 복합채널(Multi channel)을 통해 소통을 극대화하는 작가이다. 그동안 그가 작품에 사용했던 것들은 물, 불, 흙, 나무, 돌, 모래, 소금, 풀 등의 자연적인 요소와 철, 스테인리스스틸, 유리, FRP 등 광물질이나 상업적인 비디오, 홀로그램, 광섬유, 네온 등 첨단적인 것과 함께 항아리, 촛불, 동전 등 오브제적인 것들이다.

이렇듯 그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모든 매체를 통해 다감감(시각, 청각, 촉각, 후각)을 복수 예술적 조각, 입체 설치, 릴리프, 화화, 퍼포먼스적인 토탈 환경을 창조해 내고 있다.

더욱이 전시마다 다양한 퍼포먼스로 먼저 관객들에게 다가서는 등 예술에 대한 다양성을 사람들이 고루 알게끔 동화해 나가는 것이 그만의 매력이다.

그는 1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로서 예술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고 어머니 역시 평생을 자식교육에 매진했다.

예술교육에 대한 아버지의 적극적인 의지 덕분에 유년시절부터 심영철 교수를 비롯한 오남매는 음악, 미술, 무용을 비롯한 예술적 교육환경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독서와 자식에 대한 헌신이 삶의 전부였던 어머니의 성향은 작업에만 몰두하는 그에게 온전히 이어졌다.
 

 

 


“네 살 때부터 음악에 맞춰 자연스레 춤을 출 정도로 무용에 호기심이 많아 한국무용과 발레를 배우게 됐죠. 중학교 때는 전국무용콩쿠르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면서 아버지는 제가 무용가가 되기를 바라셨죠.”

심영철 교수의 퍼포먼스에는 이러한 성장배경이 깔려있다. 역동적인 움직임과 음악적인 요소가 그의 작품 속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바로 모든 예술 영역을 아우르는 호기심과 교육적 바탕 위에서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75년 성신여대에 입학한 심영철은 당시 미국 유학에서 막 돌아온 정관모 교수의 작업 모습을 보고 조각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됐다.

“정관모 교수 작업실에서의 첫 번째 과제가 ‘돌덩어리처럼 굳은 흙을 부숴라’, ‘석고가 지저분하게 붙은 주전자를 깨끗이 닦아서 물을 끓여라’, ‘나무의 껍질을 벗겨라’ 였죠. 이는 곧 동경이 아닌 진지한 열망, 즉 기본적인 재료와 작업과정에 대한 진정한 이해로부터 조각을 시작하라는 가르침의 과제였습니다”

이후 1983년에 열린 심영철의 ‘빗의 단계적 표상’이라는 자신의 첫 개인전을 열게된다.

“여인의 단장 도구였던 빗을 소재로 여성성과 사물에 대한 탐색을 시도함으로써 물질의 이면에 잠재해있는 정신적 요소를 작품 속에서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것은 저의 생애가 곧 자신의 작품이며, 개인전 주제들 속에는 자신의 삶과 정서가 녹아있음을 뜻하고 있죠.”

이어 심영철 교수는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하고 그 직후인 84년에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미국에서 로스엔젤레스의 ‘Otis-Parsons’에서 코스워크를 수강하고 동시에 ‘Golden State University’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자신의 조각적 환경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면서 다양하게 발전시켜 나갔다.

“유학시절 동안 그는 홀로그램, 비디오, 설치, 라이트 아트, 키네틱 아트 등 새로운 매체와 장르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특히 ‘덩어리’라는 전통적인 개념에 충실하도록 조각교육을 받아온 저에게 새로운 환경과 과학의 진보는 매체에 대한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자극했죠. 그리고 그 호기심은 새로운 매체에 대한 실험을 부단히 지속시킴으로써 과학의 산물들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심영철 교수가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체험한 현란한 네온 간판들은 그의 라이트 아트의 영감이 되었고, 컴퓨터와 같은 문명의 이기를 작품으로 구상하기도 했다. 우연히 서점에서 접한 백남준에 관한 기사에서 그가 모니터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설치 조각가로서의 그의 행보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심영철 교수가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1989년에 개최한 개인전 ‘Jesus Love You’(갤러리 동숭아트센터)와 그 이후의 전시들은 다양한 매체에 대한 모색을 통한 그의 실험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당시 그의 작품을 전통적인 조각이나 예술로서 인정하지 않았던 시선들도 존재했지만 자신이 가진 본능적인 호기심과 예술에 대한 열린 인식에 누구보다도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의 예술적인 영역을 구축해나갈 수 있었다.

특히 그에게 있어 종교를 빼 놓을 수 없다. 기독교 신자이기 전에 그 세계에 심취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작품에서 보여주는 종교적인 철학은 단순하지 않다.

그의 언어가 인간이 아닌 예술가가 절대자를 향한 끊임없는 사랑의 표현으로 다가서고 있다. 그렇다는 점에서 그의 예술세계에 이면에 있는 한 예술가의 신선한 영혼의 메세지가 그의 일렉트로닉 가든에 숨쉬고 있다.

그의 자선전에는 “사랑이라는 주제는 언제나 나의 예술에 있어서 그 바탕을 이루는 것으로, 신의 섭리요, 남남의 섭리이다. 인간과 신이 만나는 것 역시 사랑을 통해서만이 가능하고 이러한 섭리는 또 자연을 다스리며 인간과 세계를 통합한다”라며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작품관이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리고 현재 심영철 교수는 늘 새로운 관심거리를 찾아 스스로가 학생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지금은 예술과 경영에 대한 수업을 들으며 ‘창의성’에 대한 열린 시각을 배우고 있습니다. 기업가들의 경영마인드와 예술가의 작가정신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거든요. 그 동안 기술이 세계를 이끄는 힘이었다면, 이제는 ‘예술’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가들이 세계를 주도하기 위해 필요한 창의성이 예술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믿음 아래서 그는 보다 적극적으로 예술과 환경, 예술과 기술, 예술과 상업을 연계시킨 것이 맞지 않을까요?” 이처럼 심영철 교수는 창조적인 발상을 위한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심영철 교수는



△984~88 G.S.U. Ph.D OTIS Parsons. U.C.L.A. △1983 성신여대 및 동대학원 조소과 졸업 △1956 서울 출생

■전시경력 △2003 유토피아-[Best Star, Best Artist], 인사아트센터 △Monumental Garden for the Future Environment(영상설치) △19회 사라예보 국제 페스티발 △Art Gallery of Bosnia & Herzeovina, Sarajevo △Color of Korea, 모리오카 미술관, 이와테, 일본 △2002 환경을 위한 Monumental Garden (영상·설치), 인사아트센타 △Color of Korea, ATC 미술관, 오사카, 일본(기획전) △Color of Korea, 아이치 미술관, 나고야, 일본(기획전)

■수상내역 △평론가협 최우수예술가상 △토탈미술관상 △한국미술작가상 △마니프 특별상

■작품소장 △호암미술관 △대한방직 △횃불선교센터 △워커힐미술관 △코리아컨츄리클럽 △인터콘티넨탈호텔 등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