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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최혜영 수원음악진흥원장

사재 털어 오케스트라 3개나 운영하는 ‘여장부’

 

화성 뮤지컬은‘오페라+판타지’의 세계적인 무대 될 것

노동부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 그나마 숨통

글 l 김동섭 부장 kds610721@kgnews.co.kr 정리 l 최영석 기자 choi718@kgnews.co.kr

대 한민국 중원(中原)의 도시, 대왕 정조(正祖)의 계획도시. 그 곳에 음악진흥원 산하 오케스트라가 있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당연하지!’라고, 하지만 ‘사설(私設)’이라면 절반은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도저히 운영이 안돼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상황이라면, ‘에이, 정말?’ 혹은 ‘그렇겠지!’라고 반반(半半)이 갈릴 터. 대한민국 234개 지자체 가운데 이런 사설단체가 있는 지역은 단 한 곳, ㈔수원음악진흥원(MIOS: Music Institute Of Suwon)이다. 원장은 최혜영(51) 씨. 플롯을 전공한 음악인이다.



왜 설립했을까. 전문 음악인들이 직업 연주자로서 꿈을 잃지 않고 연주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 터전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다. 사재(私財)를 털어서다. 순수 음악을 살리기 위한 ‘기부(寄附) 천사’라는 표현이 적합할 듯. 지난 2008년 11월 개원했다. 산하 예술단은 오케스트라(프로1개, 아마추어 2개), 앙상블, 소그룹 연주팀, 예비단원으로 구성했다. 2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연주 기량은 일취월장해 수준급. 하지만 재정면에서 ‘홀로서기’는 아직 요원하다. 안타깝다. MIOS(수원음악진흥원)를 범시민 차원에서 살릴 수는 없을까. 우리의 몫이다. 지역문화 브랜드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것은….

지난 1월17일 오후3시수원장안구장안공원맞은편‘앙상블’카페에서최원장을만났다. 그녀는 인터뷰 장소를 수원 권선구 권선동자신의 MIOS 지하연습실을 원했지만 ‘사진촬영의 노출에 문제가 있다’고 설득했다. 늘 머무는 터보단 탁 트인 카페가 훨씬 그녀의 예술적 섬세함과 더 어울렸기 때문이다. CEO로서도 뭔가 신중함을 깨는 파격의 발언이 있을 듯 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2시간여 인터뷰 내내 그녀는 속시원히 그간의 체증을 맘껏 토해냈다. 매우 차분하고 현실 진단이 정확한 문화적 CEO였다.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십니까. 어떤 소명의식이라도 있는 건가요?” 첫 질문부터 다소 저돌적으로 대들 듯이 물었다. 그녀는 씨익 웃었다. 웃는 모습이 소녀같았다. “클래식 음악인들의 애환을 치유하고 싶었어요. 음악을 아는 사람들이 추구하지 않으면 영원히 이룰 수가 없는 거죠. 해마다 13만 명의 전문음악인들이 배출되지만 사실 갈 곳이 없어요. 대학에서 매년 저소득층, 극빈층, 취약계층들을 꾸준히 배출하는 꼴이죠. 이들의 꿈을 보듬고 싶었어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어요.”

그녀의 대답은 단순 명료했다. 오로지 클래식을 살리고 연주자의 연주활동을 돕기 위해서다. MIOS 오케스트라 예술단은 60여명으로 구성됐다. 모두 4년제 음악대학을 나온 프로들이다. 이들 대다수는 개인레슨 혹은 알바로 전전한다. 하지만 MIOS 창단 이후 다소 형편이 나아졌다. 연주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됐다. 음악인으로서 이보다 더 보람된 일이 어디 있으랴. 게다가 연주 때마다 적은 급여라도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 급여를 충당하는 사람이 최 원장이다. 척박한 문화예술 토양에 가래질하고 물길이라도 끌어대기 위한 그녀의 아름다운 기부(寄附) 아닌가.

벌써 그녀는 건물 1채 값을 쏟아부었다. 요즘 세상에 어느 누가 이런 바보짓(?)을 하겠는가. “지금까지 얼마를 썼습니까. ‘희망의 빛’은 보입니까.” 너무 안쓰러워 물었다. “7억여 원 들어갔어요. 앞으로 2~3년은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뭘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맘 편해요. 클래식이 살아나면 도시가 한결 아름다워질 거예요. 머잖아 이뤄질 거라 확신해요.” 다행히 MIOS는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의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됐다.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파는 기업’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빠르면 올 3월부터 단원 1명당 4대보험과 월 83만원의 최저 생계비가 지원된다.

화제를 창단 이후 연주활동으로 돌렸다. “창단한지 6개월여만에 첫 연주를 했던데요. 당시 관객들의 반응이 대단했다고 들었어요.” 이 질의에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소방 호스가 물을 뿜듯 MIOS 자랑이 시작됐다. “2009년 5월16일‘꿈의 이야기 그 첫번째’라는 타이틀로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공연장에서 창단연주회를 했어요. 그것도 MIOS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MIOS 윈드 오케스트라 등 2개의 오케스트라를 무대에 올렸죠. 연주자만해도 무려 168명, 음악 관계자들 조차 깜짝 놀랐죠. 경천동지할 일이었지요.” 대반란이었다. 문화예술전문 케이블 채널인 아르떼TV가 생중계했다. 관객은 1천200여 명. 단 1회 무료공연이었다. 경기문화재단으로부터 1천만원 지원이 있었을뿐 수원시의 지원은 없었다. 당시 적자는 1천200만원, 연주자들의 활동 페이(Pay)였다.
 

 

 


그해 7월과 8월, 두 번째, 세 번째 연주회를 가졌다. 세 번째 연주는 과감히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 홀에서 벌였다. 비약적인 발전이다. 다소 흥분된 듯 당시를 회상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코프스키의 만남’이란 타이틀로 무대에 올렸어요. 지휘자는 김정덕 한세대교수, 피아노 협연으론 임미정 한세대교수도 참여했죠. 웅장했어요. 전석유료였어요. 놀랍게도 800여명의 관객이 대성황을 이뤘어요. 단원들의 70%가 유학파였죠. 호응이 대단했어요.” 당초 2천만원 적자를 예측했으나 유료관객 덕분에 그 절반인 1천만원에 그쳤다. 티켓 판매비 2천만 원은 전액 연주자 활동 페이(Pay)로 지급했다. 적자 1천만원은 광고비와 대관료였다.

연주회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 콘서트까지 열한 번째가 열렸다. 그때마다 클래식 문화는 그녀의 꿈만큼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 수원시의 왜곡된 클래식 마인드는 여전하다. 따뜻한 음악이 힘들고 지친 이웃들을 일으키는 힘이란 것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게 그녀로선 너무 서운하다. “짤막한 에피소드를 소개할까요. 매년 여름, 수원시가 ‘성곽음악회’를 열죠. 2008년 담당 과장을 찾아가 ‘기악부문 장르별 행사를 MIOS에서 맡겠다’고 제의했어요. 그랬더니 그 과장이 ‘관광객들은 시간이 없어서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할 말을 잃었어요. 이듬해 ‘성곽연주회’에 우리 MIOS 연주팀 중 주말 1~5시까지 금관5중주와 관악4중주 등 9명이 참여했는데 20만원 주더군요. 교통비도 안되는 거죠. MIOS를 마치 민간취미활동단체로 치부할 땐 정말 화가 납니다.”
 

 

 


수원시의 지원은 극히 미약하다. 모 복사꽃 축제에 가수들을 초청하는 행사에는 수천만원의 예산을 팍팍 지원하면서도 정작 프로음악인들에게는 무대접 푸대접이다. 그런 섭섭함이야 더 말하면 뭐하랴. 그녀에게 비전을 물었다. “앞으로 야심찬 사업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그녀는 당차게 밝혔다.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과 관련한 장기 순회공연 뮤지컬을 선보일 거예요. 악기를 동원한 ‘오페라+판타지’의 새 장르가 될 거예요. 아마 전 세계적으로 처음일 거예요. 현재 작품을 추진 중이고요, 성공하면 단원들이 직업인으로 정착하게 될 거에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대단한 기획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봬기로만 언급할 뿐 더 이상은 설명하지 않았다. 성공예감이 들었다.

MIOS 연주회의 모든 팜플렛 속에는 ‘후원 회원 및 도와주신 분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 첫 번 째 이름은 ‘김홍섭(58)’ 씨다. 그녀의 든든한 재정적 후원자다. 남편이다.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저의 뜻을 알고는 ‘이왕 시작한 것, 최고로 만들라’고 격려했어요. 지금까지 변함없이 모든 물질적 지원을 책임지고 있어요.” 헌신적인 남편이 없었더라면 벌써 빚지고 무너졌죠.“ 남편의 이야기를 꺼낼 때 그녀의 눈가는 붉어졌다. 고교(영복여고) 재학 때 고적대 악장을 지낸 그녀는 그 꿈을 뒤늦게 펼쳤다. 결혼 후 외아들을 성장시킨 후 1990년 대불대 음악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체코 부르노 시립음대에 유학 플루트를 전공하고, 대불대 대학원 음악학과 예술경영을 전공했다. ‘늦깍이’ 음악 인생이다.

그녀에게 “멘토가 있냐”고 물었다. “금난새 지휘자예요. 클래식 음악을 활성화 시켰죠. 외국 음악가로는 플롯스트인 제임스볼웨이 이구요.” 다시 “인생철학 혹은 좌우명이 뭐냐”고 다시 물었다. 그녀는 ‘베토벤 독백’으로 대신했다. “저는 계속 꿈을 꿀 겁니다. 저와 함께 했던 부스러기 인생들도 계속해서 꿈을 꿀 겁니다. 꿈만 꾸지 않고 열정을 쏟을 겁니다. 열정이요. 꿈만 꾸지 않고 열정을 쏟아부을 때 바로 거기에 아름다운 음악같은 행복이 있는 겁니다.”

 

 

 



최혜영 수원음악진흥원(MIOS) 원장은



△수원영복여중고 △대불대 음악학과 플루트 전공 △체코 부르노 시립음대 플루트 전공 △대불대대학원 음악학과 예술경영 전공 △㈔수원음악진흥원 원장 △한국음악협회 회원 △국제로터리 클럽회원 △제4회 아시아 국제콩쿨 관현악 부문 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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