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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김면기 공인회계사

73세의 노련함으로 기관경영 이끄는 ‘미다스의 손’

자동차 부품회사 접고 택한 경기도 고문회계사의 길

성실함 인정받아 경기문화의 전당 감사 등 역임


글·사진 l 최영석 기자

choi718@kgnews.co.kr

 

 

 



‘공인회계사’하면 ‘기업’에 대해 ‘회계감사·세무·경영자문’하는 다소 머리 아프고 딱딱한 직업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전 경기도 고문 회계사, 경기문화재단 감사, 경기도 문화의 전당 감사, 경기바이오센터 감사, 경기농림진흥재단 감사 등 활동영역을 폭넓게 아우르는 회계사도 있다. 주인공 김면기 공인회계사를 만나 그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스토리의 단면을 들춰 보았다.

“의사는 환자의 몸의 상태를 진단하지만, 회계사는 의뢰인의 회사 또는 기관의 경영상태를 진단합니다” 김면기 회계사는 ▲회계에 관한 용역업무 계획·관리 업무, ▲재무회계감사·증명 업무, ▲재무서류의 조정업무, ▲기업의 소득세보고서 작성업무, ▲의뢰인의 위임에 따라 재무회계서류의 작성업무 등 다소 복잡해 보이는 회계사 업무를 의사의 업무에 비유해 알기 쉽게 설명하며 인터뷰 서두를 열었다.

‘공인회계사 김면기사무소’에서 만난 그는 올해로 73세의 나이지만 인상이 참 밝다. ‘웃으며 살자’를 캐치프레이즈로 정해 항상 실천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란다.

김 회계사의 성격은 한 가지일 보다는 두 가지 일을 병행 처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는 지난 1962년에는 해군에서 3년 근무하면서 야간시간을 이용해 단국대학교 경상대학 상학과 공부를 했으며, 지난 1967년에는 서울신문사에 근무하면서 새벽시간을 활용해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두 마리 토끼 잡으려다 둘 다 놓친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김 회계사에게는 거리감 있는 ‘말’ 인듯 싶다. 김 회계사는 지난 1965년 무사히 대학도 졸업했고, 지난 1968년에는 버젓이 제 4회 공인회계사 시험에도 합격했으니 말이다.



오일쇼크로 인한 사업실패

‘공인회계사’시험에 합격한 김면기 회계사는 한국세무사회 감사업무, 사단법인 한국능률본부 기업진단 부장, 경제기획원 행정개혁조사위원회 촉탁 사무관, 한국공인회계사회 이사 등을 거치며 회계사를 천직으로 생각하며 일했다고 한다.

‘인생을 산다면 누구에게나 위기는 찾아오기 마련’이라는 말이 있듯이 김 회계사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회계사 일을 하다 사업성은 좋은데 자금이 부족한 회사를 알게 된 김 회계사는 즉시 이 회사에 주식투자를 했고 그의 예상대로 회사의 주식은 폭등해 큰 돈을 벌게 된다.

쉽게 부(富)를 얻은 김 회계사는 천직으로 여기던 회계사의 길을 버리고, 자동차부품 제조업종인 ‘한국고분자 주식회사’를 세운다. 그러나 몇 해 지나지 않아 회사 문을 닫아야만 했던 사연을 들어보자.

“사업을 시작한 1977년 당시 대우나 현대 등 한국에 자동차 회사들은 한 해에 3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했고, 다음해 자동차 생산목표를 2배인 60만대로 늘렸다. 당연히 자동차 부품회사였던 한국고분자 주식회사는 늘어날 자동차 생산량에 맞추기 위해 부족한 자금을 외부에서 끌어들여 시설을 늘렸다. 그러나 1979년 오일쇼크(제2차 석유파동)가 일어나 12~13달러 하던 석유값이 30달러로 올라가면서 자동차회사들은 자동차 30만대도 생산하지 못하게 됐다”

결국 김 회계사는 오일쇼크로 인해 경영악화로 이어진 ‘한국고분자 주식회사’를 지난 1980년 접는다.



제2막의 회계사 인생

사업실패로 재산을 모두 탕진한 김 회계사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법’이란 말을 교훈으로 서울에 위치한 ‘청운 회계법인’에서 회계사로 재출발한다. 김 회계사는 그곳에서 15년 동안 일하면서 기업 회계감사차 이라크,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한국일반여행업협회에서 용역을 맡아 ‘여행업 회계 매뉴얼’이란 교본도 만든다.

그러나 김 회계사의 마음 한켠에는 항상 “관공서의 회계사로 일해 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고 한다.

‘모든 기회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던가. 꿈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한 그에게 기회는 찾아왔다. 김 회계사의 고향 수원이 소재지인 경기도청에서 공개모집한 고문 회계사에 그는 응시해 지난 1996년부터 경기도 고문회계사로 위촉돼 일하게 된다.

김 회계사는 경기도 고문회계사 당시 가장 자부심을 느꼈던 일로 “매년 적자 운영을 하던 경기도의료원에 대해 중점적인 회계감사와 경영진단을 실시해 의료원 운영을 개선시킨 점”을 들었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4년 동안 경기도 고문회계사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일한 김 회계사는 그 능력을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아 경기도 결산 검사 위원, 경기도 교육청 결산검사 위원, 경기도 주민투표 청구 심의위원 등을 거쳐 현재 경기문화재단 감사, 경기도 문화의 전당 감사, 경기바이오센터 감사, 경기농림진흥재단 감사를 맡고 있다.

아울러 수년전부터 신뢰로 이어진 동남석유공업주식회사, 삼보중기건설주식회사, 남영유화공업주식회사 등의 기업 회계감사도 매년 맡고 있다.

김 회계사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항상 일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성실함’이라는 단어로 요약한다.

“한국사회는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일을 잘 안주는데, 이렇게 끊임없이 일을 맡겨주는 것은 아마도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해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가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주어진 업무에 대해 성실하게 해준다면 거래처는 꾸준히 신장될 것으로 본다”



인생을 즐기면서 80세까지 회계사가 꿈

김면기 회계사는 골프를 좋아하고 실력도 ‘보기플레이어’ 이상으로 수준급이다.

지난 2004년 11월 1일 코리아 C.C에서 펼쳐진 ‘한국공인회계사회 창립50주년 기념 친선골프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한 그는 현재 회비를 수재의연금을 내거나 불우이웃을 돕는 등 선행을 펼쳐온 국내 최장수·최다 라운드 기록의 골프모임 ‘용지회’의 회장이기도 하다.

끝으로 김 회계사는 “인생을 즐기면서 80세까지 회계사 일을 놓지 않는 것이 소망”이란 그의 바람으로 인터뷰 결미를 맺었다.

 

 

 



김면기 회계사는

△수원 농림고등학교 졸업(임학과) △단국대학교 경상대학 상학과 졸업(16회)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경리과장(전) △한국공인회계사회 이사(전) △사단법인 한국능률본부 기업진단 부장(전) △경제기획원 행정개혁조사위원회(촉탁사무관)(전) △한국고분자 주식회사 사장(전) △정우개발 주식회사 회계고문(전) △청운회계법인 책임사원(전) △화성상공회의소 재무 및 자금관리 자문위원(전) △경기도 고문회계사(전) △경기문화재단 감사(현) △경기도 문화의 전당 감사(현) △경기바이오센터 감사(현) 경기농림진흥재단 감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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