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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여순호 어린이재단 경기지역본부 후원회장

“나의 작은 후원이 어린이와 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41년 공직생활 마감하고 찾은 제2의 인생은 ‘남을 돕는 일’
불의에 저항하는 뚝심으로 “어린이재단 후원 끝장 볼렵니다”

글 l 안병현 편집장 abh@kgnews.co.kr
사진 l 노경신 사진부장 mono316@kgnews.co.kr

 

 

여순호 어린이재단 경기지역본부 후원회장은 경기도청에서 공무원으로 잔뼈가 굵은 여장부다. 도청에서 여성정책을 총괄하며 호령하던 그가 어떻게 한 재단의 후원회장을 맡았는지 궁금했다. 그에 대한 일화를 먼저 소개한다. 1995년 경기도 여성회관장 재직시절 성매매 피해여성들을 위한 재활교육 시설인 경기여자기술학원 화재로 35명의 교육생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도청 당국은 그에게 사표를 종용했다. 그 내면에는 선거에서 현 도지사를 지원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더 컸다. 그러나 그는 도지사를 상대로 행정심판을 제기해 승소했다. 이 후 그에게는 ‘불사조’란 별명이 따라 붙었다. 지난 2007년 41년간의 공직생활을 접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경기도당 여성위원장을 지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선거가 끝나자 마자 뛰쳐 나왔다고 한다. “나에게 정치는 맞지 않더라구요”

여 회장을 만난 것은 2월 17일 본사 접견실에서다. 필자가 도청 출입기자 시절 이후 16년만의 만남이었지만 얼굴이 기억난다며 반가워했다. 올해가 64세인 여 회장은 정년퇴직 이후 화성시 서신면에 집을 짓고 가족들과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다. 농촌생활 3년만에 안경을 벗어던졌다고 자랑한다. 농촌생활의 즐거움을 한참동안 설명했다.

- 어떻게 어린이 재단 후원회장을 맡게 되었어요.

“제가 경기도 가족여성정책국장을 하면서 어린이재단을 잘 알고 있었어요. 정년퇴직 한 이듬해 어린이재단 경기후원회장 제의를 받고 선뜻 응했습니다. 그때가 2008년 1월이에요. 저는 공무원 시절부터 어린이재단 후원을 조금 하고 있었어요”

- 그렇게 생소하지는 않았겠군요.

“처음 후원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은 의왕에 있는 나자로마을을 다녀와서 부터였어요. 벌써 30년전의 일입니다. 이들은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데 당시만 해도 남을 돕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거든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적은 액수지만 후원금을 보내고 있습니다”

- 남을 도울 만큼 재산이 많으신가요.

“남편과 함께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풍족한 편은 아니지요. 후원이라는 것은 기쁨입니다. 큰 것이 아니라 작은것 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만원이 모여서 10만원이 되듯이 부담을 느끼지 않고 시작하다보면 자기 자신에 대해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후원은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이 더 적극적이라고들 말합니다. 후원도 습관이라고 합니다. 어린이시절부터 관심을 갖도록 하는것도 중요합니다”

 

 

어린이재단 경기후원회 천군만마를 얻다

여 회장이 2008년 1월 어린이재단 경기도 후원회장을 맡으면서 재단측은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그의 활약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선 여 회장은 300만원의 후원금을 내고 평생회원이 됐다. 후원회 이봉로 부회장(세전수사 대표)도 선뜻 500만원을 내고 평생회원이 돼 주었다. 90년 이후 후원을 해오고 있던 후원회 수석 부회장 김영후 수원약사회장도 300만원의 후원금을 내고 팽생회원이 됐다. 후원회 사무총장인 김명배 선일종합건축(용인 흥덕지구) 대표도 부인이름으로 평생회원의 뒤를 이은 것은 물론 개인 후원자 발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렇게 두둑한 후원금을 내고 평생후원자가 되어준 사람만 10명에 이르고 있다. 이 모두 여 회장의 숨은 노력의 결과라고 어린이재단 경기지역본부 임성근 모금개발팀장은 귀띔한다.

여 회장은 틈나는 대로 지인을 찾아다니며 후원자를 물색하느라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해서 300여명의 소액 후원자가 재단에 참여하고 있다. 여 회장이 후원회장 취임한 이후 새로운 사업도 생겨났다. 2008년 11월 한국마사회 김장나누기 운동에 참여했고 2009년 5월에는 초록산타 후원행사를 벌여 후원금 2천500여만원을 모금하는 성과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밖에 2009년 스리랑카 식수지원 사업 후원금 1천100만원, 2010년 아이티 긴급지원 후원금 200만원, 저소득아동 희망도서보내기 후원금 250만원, 한부모가정 휴가보내주기에 후원금 250만원, 연말 저소득가정 아동 선물 지원후원금 650만원의 성과를 올렸다.

사실 여 회장의 후원이력은 남다른데가 있다. 가족 모두를 후원에 동참시킨 것이다. 노령수당을 받고 계시던 시어머니 허해순 여사(95)가 작년에 작고하자 손자, 손녀를 통해 스리랑카 아동을 이어서 후원하고 있다. 그의 남편 홍윤선씨(64)도 국내 아동 후원을 맡고 있고 아들 승일 씨도 해외아동을 맡아 후원하고 있다. 언니 여운덕씨(75)도 1천만원을 내고 스리랑카 우물파주기 팽생회원이 되었다. 또 해외아동에게 월5만원씩 후원금을 보내주고 있다.

여 회장은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후원자를 만날 정도로 열정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2009년에는 경기후원회 이름으로 ‘5월의 산타’ ‘스리랑카 우물파주기’ 사업을 실시했고 그 외 후원 이슈가 있을 시 경기후원회 위원들을 동참시켜 지속적인 후원활동을 하고 있다.

 

 

1966년 면서기로 공직 첫발

여 회장은 1966년 경기 화성 봉담면 면서기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경기도청으로 근무지를 옮긴 여 회장은 5년마다 부녀복지계장에서 부녀복지과장으로, 또 경기도 여성회관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이어갔다. 2005년 가족여성정책국 신설과 함께 개방직 공모를 통해 국장으로 임명된 그는 지난 2년간 경기도의 여성·청소년·보육 문제를 해결하는 기틀을 만드는데 큰 공을 세웠다는 평을 듣는다.

국장 시절인 2006년 5·31 지방선거 때 시장과 도의원을 권유 받았던 일이 있다. 당시 전략공천 대상자로 물망에 올라 관심을 불러모았지만 정작 여 국장 본인은 “남의 공을 가로채는 것 같고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거부했다”고 한다. 2007년 1월 경기도 가족여성정책국장을 끝으로 41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그는 마지막회의에서 “때를 놓치지 말고 업무를 추진하라. 모든 사회가 그렇겠지만 공직사회에서 2등은 안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1948년 CCF(미국기독교아동복리회)한국지부로서 국내아동구호 사업을 시작하여 1976년부터 자주적 사업을 추진하여 UN의 아동권리협약을 기초로한 생존지원사업, 보호지원사업, 발달지원사업, 권리옹호사업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자립할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최불암(연기자) 전국후원회장, 홍보대사 이홍렬(방송인), 장윤정(가수), 해바라기(가수), 김경란(아나운서), 나눔대사 고두심(연기자), 공지영(작가), 미아찾기홍보대사 엄앵란(방송인)이 어린이재단과 함께 하고 있으며 이홍렬 홍보대사는 기업, 단체를 대상으로 한 ‘Fun donation’ 기부 교육을 통해 많은 분들의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 975-13 서린프라자빌딩 7층

www.childfund.or.kr

후원문의 031-234-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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