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었다,
도시가 나무에게
반어법을 가르친 것이다
이 도시의 이주민이 된 뒤부터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나도 곧 깨닫게 되었지만
살아 있자, 악착같이 들뜬 뿌리라도 내리자
속마음을 감추는 대신
비트는 법을 익히게 된 서른 몇 이후부터
나무는 나의 스승
그가 견딜 수 없는 건
꽃향기 따라 나비와 벌이
붕붕거린다는 것,
내성이 생긴 이파리를
벌레들이 변함없이 아삭아삭
뜯어 먹는다는 것
도로변 시끄러운 가로등 곁에서 허구한 날
신경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피어나는 꽃
참을 수 없다 나무는, 알고 보면
치욕으로 푸르다
손택수 시집 나무의 수사학-2010 실천문학사
이 시에 나타난 나무는 인간처럼 고단한 생을 살고 있다. 그리고 나무와 한 인간의 삶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무와 우리 인간은 어딘가에 정착해 뿌리내리기를 시도해 성공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무수한 위기와 시련들을 이겨내야 한다. 벌들과 벌레, 가로등, 신경증과 불면증 등을 이겨내는 존재만이 푸른 잎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던가.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슬프게 운다고 했던가. 꽃을 피우기 전까지 견디기 힘든 치욕이 시시각각 나무와 우리 인간을 질타했을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와 한 인간은 그래서 다르지 않다. 그들이 최종적으로 피워 올린 꽃은 오랜 치욕을 떨치고 탄생한 푸른(찬란한) 꽃이다. 그래서 꽃은 눈부신 부귀영화가 아니라 오랜 고통의 반어법이다./박병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