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亡者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喪家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는 마당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구두들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 신고
담장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北天에 새로 생긴 별 몇 개
- 유홍준 /‘喪家에 모인 구두들’
/2004 /실천문학사
객관과 주관은 동떨어져 있는 듯 서로 다른 개념으로 여겨지지만 ‘죽음’ 앞에선 구별되지 않는다. ‘喪家’라는 공간에선 특히 그렇다. 문상을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앞에서 쓸쓸해지는 이유는 ‘죽음’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두 주관적이 된다. “저것”과 “이것”을 구분하며 모두가 이기적인 마음이 되어 “내것”만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지만, 누구나 ‘죽음’은 피해갈 수 없다. 이제 곧 2012년도 저물어 간다. 선거철을 앞두고 여야가 서로 ‘너’니, ‘나’니 하는 공방전을 펼치는 풍경들이 “喪家”의 구두들처럼 보인다. 주관과 객관을 함께 간직하며 살아가는 모두 앞에서 다가오는 2013년은 따뜻한 별자리들로 빛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