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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최영철"거"

 

거                                                          /최영철

용서해다오 내가 그랬던 거 그때 막 갔던 거

짓밟은 거 그냥 돌아서 온 거 말 못한 거

차버린 거 못 가진 거 못 가진 줄 알았는데

다 가진 거 그러고도 자꾸 서러워 울었던 거

잘 가라 말하지 못했던 거 돌멩이만 걷어찬 거

하늘만 바라본 거 못 다 한 거

그러고도 미안하다 말 못한 거 먼 산만 바라본 거

주머니는 텅 비었지만 속은 그득했던 거

그러면서도 자꾸 아프다 말한 거

너의 아우성을 말없이 넘어온 거

숨어 돌아서서 눈물만 흘린 거

너 없어도 이리 잘 살고 있는 거

딱 거기까지만 살겠다고 맹세한 거

무수한 약속의 촛불을 켰던 거

돌아오며 다 꺼버린 거

이 거친 회환을 어느새 용서해 버린 거

다 옳다 괜찮다 해버린 거

이제 눈물도 참회도 말라버린 거

너를 두고 나 혼자 저 먼 바다로 내빼는 거

거거 거거 더듬더듬 우물우물 말꼬리를 흐린 거



출처 -『불교문예』 2011 겨울호

 

살다 보면 용서해달란 말 한 마디 제대로 못 하고 떠나보낸 인연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가슴을 치는 부분이 “못 가진 줄 알았는데 다 가진 거” “무수한 약속의 촛불을 켰던 거 돌아오며 다 꺼버린 거” 그럼에도 “이 거친 회환을 어느새 용서해 버린 거”다. 어쩌면 우리는 “다 옳다 괜찮다” 해버리며 고함치고 화내야 할 일을 그만 눈감아 버린 건 아닌지, 그것을 용서받아야 할 것은 아닌지. 결국 “이제 눈물도 참회도 말라버린” 뒤 텅 빈 껍데기만 남은 공허한 눈길로 말을 더듬고 “말꼬리를 흐린” 채 소시민으로 존재하고 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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