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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문성해"미역국 끓는 소리"

 

미역국 끓는 소리                                                  /문성해

방에 누워 부엌에서 미역국 끓는 소리를 듣는다



비릿한 미역줄기들이 커튼처럼

우리 집 창틀에 매달리는 걸 본다 그 속에

미역줄기 같은 머리를 감고 죽은 앵두집 아이도 보인다

그 아이의 심하게 접힌 다리가 이상하게도 펴져 있었다

저수지에 빠져 죽은 그 아이

그곳에선 앉은뱅이 다리가 쉽게 풀리더라고

부러진 의자들도 수초처럼 물결에 흔들리며 서 있다고

그곳에선 모든 것이 펄펄 끓는 춤이더라고



방안에서 듣는 미역국 끓는 소리는

다급하게 누군가 우리 집 지붕을 열려고 들썩거리는 소리 같다

장롱 속 이불들이 들썩거리고

옷장 속 개어진 옷들이 천천히 일어서고

저수지 아래 가라앉은 내 노래가

서서히 비등점을 향해 끓어오를 때

출처-시집 자라/2005년 창비

 

누군가 세상에 첫 울음 소리를 들여놓은 날을 기억하기 위해 미역국 끓이는 아침. 시인은 기억 속의 ‘저수지’로 걸음을 옮긴다. 그곳에는 어떤 비밀들이 있어서 모든 것을 풀어놓는지…. 아이의 심하게 접힌 다리가 풀리고, 부러진 의자들도 흔들리며 서 있다. 미역국을 끓이는 시인의 방안은 갑자기 들썩거리고 장롱 속의 이불과 옷들이 천천히 일어선다. 오래된 미역줄기처럼 딱딱하게 말라 버린 기억들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자, 시인의 노래도 드디어 비등점을 향해 끓어오른다. 미역국을 먹는 아침, 우리는 생의 어떤 기억과 마주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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