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순례:11 /오규원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만의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출처 - 오규원 시집 『순례』- 1997년 문학동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는 명구를 남긴 순례 시편 중 하나. 빈 들에 혼자 서 있는 사람의 실루엣이 보인다.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닌 시간들, 늘 시끄럽고 와글거리는 내면의 소리들에 휘둘릴 때 빈 들에 가서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로 바람을 맞아보자.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오늘도 바람이 부는가.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