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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그녀는 걸었다

 

그녀는 걸었다                                                                  /황인숙

그녀는 걸었다, 긴 복도를

링거병을 끌고 졸음에 취한 나를 끌고

걸음, 걸음, 걸음,

문 닫힌 병동의 밤이 긴 복도

그녀는 쫓기듯 걸었다, 쫓기듯

아니, 그녀는 걸었다, 걸음, 걸음, 걸음,

자기의 걸음을 견디면서

자기의 걸음을 즐기면서

자기의 걸음을 확인하면서

걸음, 걸음, 걸음, 창백한 형광등

그녀의 걸음이 가득한 복도

그녀는 걸었다, 유령같은 나를 끌고

걸음, 걸음, 걸음,

그녀는 걸었다

그녀는 걸었다.

출처- 『자명한 산책』 / 문학과 지성사 2003년

 

 

 

비 오는 아침이다. 길 위에 물방울들이 탁 탁 쉼표를 찍듯이 걸음, 걸음을 내딛고 있다.머지않아 봄꽃들도 걸음, 걸음을 내딛고 세상 밖으로 나올 것만 같다. 아이가 화장대 모서리를 붙잡고 일어서서 한 걸음 내디딜 때의 경이와 탄성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두 다리로만 걷는 것 같아도 양팔의 조응으로 더 안전한 걸음, 뇌와 혈류의 지원으로 힘찬 걸음, 실은 온몸 온 마음으로 걷는 것이 걸음이다. 시속에는 17개의 쉼표와 한 개의 마침표가 있다. 걸음,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 살아있다는 확증이다. 투덜거리면서도 걷고, 울면서도 걷고, 꿈속에서도 걷고, 밥 먹으면서도 걷는다. /박홍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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