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얘들아 /김명기
기다리는 누군가가 오지 않는
연립주택 계단
노란 원추리 닮은 계집아이 셋
마른 라면을 부숴 먹으며 앉아 있다.
학원 갔다 오는 길이냐고
심심한 말을 붙였더니
우리는 가난해서 공부방
다닌다며 깔깔대고 웃는다.
단단한 벽 위에 제 몸을
밀어 넣지 못해 기어이
구부러지는 못 같은 그 말,
큰소리로 웃을 일인가 싶어
유독 크게 웃는 아이에게
네가 셋 중 제일 예쁘다 했더니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한사코 친구들이 더
예쁘다고 손짓을 한다.
-중략-
참으로 면구스러운 순간.
수없이 나누고 편 가르는 세상에서
가난해 학원도 못 다니는 이 아이들
그렇게 갈라진 사람들을 엮어
공평무사한 책 한 권 만들며 한나절 놀고 있는 것이다.
출처 - 김명기 시집 『북평 장날 만난 체 게바라』- 2009년 문학의 전당
“가난해서 공부방 다닌다며 깔깔대고 웃는” 노란 원추리 닮은 아이들. “달리기는 셋 중 자기가 제일이라는” 부분이 가슴을 친다. 어른들의 기준과는 동떨어진, 각자 잘 하는 것 고루 나눠 가진 “공평무사한” 시선이 우리를 “면구”스럽게 만든다. 하긴 아이들에게 미안해 할 일이 어디 한두 가진가. 남보다 성공해야 한다며 무한경쟁으로 내몰고 환경오염과 파괴로 그들이 누려야할 미래를 망쳐놓는 것도 우리 어른들이다. 그들의 행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