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에서 빠져나오다 /김훈동
세월의 더께 겹겹이 쌓인 얼굴
겨우내 닫힌 창문 열고 털고 날아가야 할
비바람에도 굽히지 않는
뜸직한 삶이여, 해묵은 응어리
무너져 내린 늪 언저리마다
숱한 이야기 박혀 있고
담대히 인내하고 시작하는 새 삶이여
처음 품은 꿈과 결심 같던
세상사 끌어안고 일탈이 두려워
여밀 틈도 주지 않고 순리를 따르는 삶이여
삶이 무거울 땐 깊은 늪에 빠져 보아라
알몸으로 섰어도 뜨거운 가슴 보듬으며
허물어진 삶 살아 있는 감동으로
함성이듯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삶이여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이 시는 수원예총 회장 김훈동 시인의 작품이다. 필자의 고향 해남인 시골집을 부부동반으로 다녀올 때가 있었다. 참신한 기획력, 또 넉넉한 지성, 수원의 큰 인물인데 늘 아쉽다. 모든 꽃이 시들고, 청춘이 나이에 굴복하듯이 삶의 모든 과정과 지혜와 미덕도 제때 피었다 지는 꽃처럼 영원하지 않다. 이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나이가 들더라도 항상 새롭게 꿈꾸려 한다면 우리의 영혼에 젊음을 가져온다. 그래서 이 시의 화자는 ‘담대히 인내하고 시작하는 새 삶이여’라고 말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등산하는 것과 같다. 오르면 오를수록 숨은 차지만 시야는 넓어진다. 그래서 이 시는 ‘삶이 무거울 땐 깊은 늪에 빠져 보아라’라고 말한다. 산에 오르면 숨이 차고 주저앉고 싶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만 정상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인 ‘허물어진 삶 살아 있는 감동으로 함성이듯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삶이여’에서 알 수 있듯이,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은 깊은 늪에 빠져 보아야만 피울 수 있는 것이다. /박병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