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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저녁눈

 

저녁눈                                                                                               /박용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출처-박용래 시집 먼 바다-1984년 창작과비평사

 

 

 

눈물의 시인 박용래(1925~1980).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미적 세계를 드물게 개척한 시인이다. 그의 시는 간결하고 담백한 묘사로 단순한 형식미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 안에는 동양적 여백미와 서구 모더니즘 기법이 녹아있다. 「저녁 눈」은 전체가 4행으로, 한 행이 하나의 연으로 구성된 짧은 시다. 모든 연마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붐비다”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시인은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을 시각적인 배경으로 삼으면서, 말집의 호롱불과 조랑말 발굽에 눈발이 “붐빈다”고 했다. 더 나아가 “여물 써는 소리”에도 눈발이 “붐빈다”는 묘사를 얻고 있다. 이렇게 “눈발은~붐비다”의 반복적 사용은 말집에서 변두리 빈터로 확장되다가, 다시 말집의 소박한 풍경으로 우리의 시선을 옮기게 한다. 그래서 이 짧은 시를 다시 반복해서 읽게 만든다. 이 시는 박용래 시인 특유의 절제된 행간의 미학을 극대화시키면서 말하지 않고도 시가 말하도록 하는 힘이 있다. 오늘 밤에도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이 시의 행간에 숨겨진 여백 속으로 천천히 걸어가야겠다.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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