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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화투판에 그리다

 

화투판에 그리다

 

/박경희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화투를 친다

광을 팔아야 하는지 내버리고 나가야 하는지

서로 눈빛만 주고받는다

삼광이 번쩍이는 형광등이 발발거리고

아부지 언능 죽으세요 며느리 말에 발끈한 아부지

시아버지한테 언능 저승 문턱 밟으라니 허, 참나

내가 헛살았구먼

얼굴 벌게진 며느리가 말도 못 하고

화투장만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판을 엎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가만가만 눈치만 오간다

옆에서 손녀가 할아버지 죽어? 죽어? 한다

넘어진 김에 코 박는다고

며느리한테 속 안 좋았던 것을

화투판에 그린다 번들거리는

똥광 틈새로 흔들리는 며느리 눈동자

갑자기 엄니가 판을 엎는다

무슨 놈의 화투판에 저승이 나오느냐고

죽으라면 죽지 죽을 판에 죽지 않고 뭐하느냐고

저녁 잘 드시고 곡소리 나오겠구먼

꽉 찬 달이 안방을 들여다본다

출처- 박경희 시집 <벚꽃 문신> 2012년 실천문학

 

박경희 시인은 사라져가는 농촌의 모습을 충청도 방언으로 능청스레 펼쳐낸다. 슬픔이 밑바닥에 깔린 해학이다. 이 시에는 시아버지와 어머니, 며느리, 손자, 그리고 화투판을 들여다보고 있는 보름달이 화투장처럼 한 장의 그림을 이루고 있다. 숨어 있는 화자의 시선도 느껴진다. 정겹다. 언젠가부터 우리 시에서는 해학이 사라졌다. 풍자가 넘쳐나는 세상, 해학이 그립다.

/박설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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