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市 /함기석
어떤 市를 가는데
어떤 커다란 돌이 굴러와 멈춘다
돌에서 다리가 쑥 나오더니 내 엉덩이를 걷어찬다
팔이 쑥 나오더니 내 빰을 후려친다
내 가발을 빼앗아 쓰더니
내 바지를 빼앗아 입더니
내 가방을 빼앗아 열더니
노트에 깨알같이 적힌 미분방정식의
오류를 지적하더니
오류의 오류를 지적하더니
내 노트를 먹어치우기 시작하더니
내 가방도 구두도 마구 먹어치우더니
나까지 먹어치우더니
다시 데굴데굴 굴러간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삼복염천의 다리 밑에서 돌은
배를 두드리며 늘어지게
낮잠을 잔다
출처- 함기석 시집 <오렌지 기하학> 문학동네
옛 어른들께 많이 듣던 소리, 눈 뜨고도 코 베어간다는 도시가 서울이다. 같은 대도시임에도 水原보다 훨씬 눈이 휘둥그레지고 눈알이 팽팽 돌아간다. 혼이 쏙 빠진다. 획획 나타났다 획획 사라지는 사람들, 건물들, 가로수들, 자동차들. 모두 나를 ‘후려치고 걷어차고 빼앗고 오류를 지적하는 돌’이다. 아니 서울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일들이 순식간 일어났다 사라진다. 그러니 내 예상은 오류투성이일 수밖에. 당연히 지적당한다. 겉으로는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지만 정신없음 속에서 누군가는 야금야금 착취당하고 누군가는 모든 걸 한꺼번에 다 잃어 허탈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서울은 개인의 불행 따윈 아랑 곳 없이 ‘낮잠 자’듯 아무렇지 않게 ‘데굴데굴 굴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