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보다 /하재연
웃음을 떠올렸던 순간은 순식간에
일어난 듯 바뀌어서 사라진다.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들
아침 햇빛이 이상하게 비춘다.
꿈속에서 나는 아주
여러 번 살아왔다.
내가 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 하재연 시집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문학과 지성사
영화에서는 인간의 삶이 메트릭스라 한다. 장자의 호접몽은 내가 나비의 꿈을 꾸는 건지 나비가 내 꿈을 꾸는 건지 모른다고도 한다. 환상이랑 허구는 분명 다른 개념이지만 때론 우리의 삶이 환상인지 허구인지 혼란스러운 순간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 가령 매일 같은 공간이었지만 잠에서 문득 깼을 때 갑자기 낯설게 느껴진다거나 처음 와 보는 곳인데 혹시 이곳에서 살았던 것 같은 데자뷰. 순간순간 보이는 헛것들. 매일 밤마다 꾸는 꿈들… 이 불가사의한 것들이 온전히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해석이 불가능해 보일 때가 많다. 어디 그것뿐이랴. 삶의 속성을 들여다보면 현대인들의 삶은 소설보다 훨씬 더 픽션 같은 경우가 흔하디흔하다. 그러니 시인은 ‘내가 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