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여애반다라 3 /이성복
이 순간은 남의 순간이었던가
봄바람은 낡은 베니어판
덜 빠진 못에 걸려 있기도 하고
깊은 숨 들여 마시고 불어도
고운 먼지는 날아가지 않는다
깨우지 마라, 고운 잠
눈 감으면 벌건 살코기와
오돌토돌한 간처녑을 먹고 싶은 날들
깨우지 마라, 고운 잠, 아무래도
나는 남의 순간을 사는 것만 같다
이성복 시집 『래여애반다라』/문학과 지성사
봄 햇살 속, 거실 창에 기댄 채 깜빡 자고 깼을 때의 나른한 행복. 긴 인생이 일장춘몽이라 했던 선현들의 말씀을 반추한다. 눈 감고 떠올리는 상상들 또한 봄날의 감미로운 잠 같은 것이다. 깨고 싶지 않은 잠이므로 타인의 잠 또한 깨우지 말 일이다. 남루한 젊은 생에 꾸었던 꿈은 ‘남의 순간을 사는 것만 같다.’ 지나고 나면 그때(남의 순간을 사는 것만 같은)조차 행복한 삶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나이가 많아지면서 경제력이나 학력 등의 차이에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태어나 타인들과 같아지고 슬픔을 겪으며 어느 정도의 위치에 서니 지난 세월이 비단처럼 펼쳐진다는 뜻의 ‘래여애반다라’. 삶에 대한 성찰이다. ‘래여애반다라’는 신라 공덕가의 한 구절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