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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눈물에 금이 갔다

눈물에 금이 갔다/김이하

남의 집 한 칸을 빌어

십수 년을 살면서

이게 어디냐고

가끔은 걸레질 비질도 했는데

(중략)

술에 치여 보낸 밤도 많았고

화가 나서 뜬눈으로 보낸 날도 있었고

그러던 어느 날 그놈이 참 듬직한 걸

보았다, 거미란 놈



눈이 시려 실눈을 뜨고 새벽처럼 일어나

전동 칫솔을 돌리는데, 이제는 쩍쩍 금이 가는 남의 집

그 틈새에 끼여 거미줄을 치는 그놈은

실은 제 집을 짓는 게 아닌가



남의 집 한칸을 빌어 사는

내 삶의 한켠에 번듯하게 제 집을 짓는 저놈

흐릿한 거미줄 틈으로

멀리 사라지는 내 등이 보인다

더 이상 걷어 낼 거미줄은 아닌 것이다

출처 - 따킨 꼬더 마잉 外 시집 『멀리 사자지는 등이 보인다』

- 2008년 화남

 

 

 

사월이다. 봄철마다 이사를 하던 기억이 새롭다. 햇볕 아래 더 남루해 보이던 이불과 살림, 내 집 마련이 지상의 과업처럼 생각되던 나날, 세입자라는 이유만으로 집주인 앞에서 주눅 들던 경험. 그런데 세든 집에 “번듯하게 제 집을 짓는” 거미를 보면서 그 “듬직한” 모습에서, 당당함에서 “내 등”을 보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주의 한켠에 세들어 사는, 세든 집 속에 또 세드는 겹겹의 세입자들. 그 동거가 우리들의 모습인 것. 셋방에 자신의 집을 짓는,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영위하는 거미의 모습이 아름답다.

/박설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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