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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밤이 되면

밤이 되면                                                         /김충규

밤이 되면 왠지 얼굴이 다 뭉개지는 기분이다

내 얼굴을 누가 흙처럼 주물러버린 기분이다

더러운 기분이 들기도 하고

식은 국을 후루룩 마셨을 때처럼

스스로 측은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낮에 멀쩡하던 얼굴이 밤이 되면 뭉개지는 기분

이런 기분 때문에 밤에는 외출을 삼간다

내 얼굴을 본 사람들이 마루 주물러 버릴까봐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반죽 덩어리인 줄 알고 수제비 속에 집어 넣을까봐

아내가 밀가루 반죽을 할 때도 가까이 가지 않는다

얼굴에 책을 덮고 자는 버릇이 생긴 것 순전히 그 탓이다

- 김충규 시집,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2013, 문학동네-

 

시인은 마지막 메모에서 ‘허공에 바치는 시를 쓰고 싶은 밤이다. 비어 있는 듯하나 가득한 허공을 위하여, 허공의 공허와 허공의 아우성과 허공의 피 흘림과 허공의 광기와 허공의 침묵을 위하여…’ 그렇게 허공을 향해 자신의 영혼을 한 편의 시로 바쳤다. 2012년 3월 느닷없이 날아온 한 통의 부고(訃告), 시인이 광활한 허공을 향해 떠나기 전 그의 밤은 두려움과 회피의 흔적으로 남았다. 세상은 누구의 얼굴이건 어둠속에서는 뭉개버리는 불쾌한 공기들로 둘러싸여 있다. 세상의 공기를 피해 외출의 문을 잠근 그는 아내의 밀가루 반죽에서조차 일그러진 얼굴을 본다. 아니, 두려워한다. 시인은 자신의 얼굴을 책으로 덮고 자는 동안 어둠을 피해, 공허의 광기를 넘어, 허공의 침묵 속에 사라져 버렸다. 남은 인생들에게 어둠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어떤 우군(友軍)을 만날 것인가 막연한 질문을 던진 채, 시인은 영원한 외출을 떠나 버린 것이다. 밤이 되면 그의 두려움을 기억하도록, 그리움마저 못박아버리고 그는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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