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듬는다/김광선
넌덜머리나게 구차했던 것들이,
정말이지 이제는 버려야만 했던 것들이
누군가에게 더 비싼 값의
가치로 매겨질 때는 지키려 애썼던
부위 슬그머니 등 뒤로 감추어야
하는 순간들에 노여웠다.
필요 없는 부분이라 내 스스로 떼어내고
잠시 잊었던가 창문 밖 뿌연 흙바람에
꽃잎들이 날린다, 봄꽃이 무더기로 진다.
허리와 허벅지에 붙인 파스를 떼어내고
새 파스를 붙인다, 거실 봄볕을
등지고 앉은 아내의 등이 활처럼 휘었구나.
멸치의 배가 갈라지고 머리가 떨어진다.
떨어지는 꽃잎마다 멸치 비린내가 난다.
출처 - 「다듬는다」부분, 김광선 시집 『붉은 도마』2012년 실천문학사
멸치를 다듬는다. 머리를 떼어내고 배를 갈라 검은 내장을 끄집어낸다. 멸치에게 비싼 값이 매겨지는 건 결국 몸통이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머리를 든다. “필요 없는 부분이라 내 스스로 떼어내고 잠시 잊었던” 봄꽃이 바람에 날리며 무더기로 진다. 그 순간 “아내의 등이 활처럼” 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내도 “지키려 애썼던 부위 슬그머니 등 뒤로 감추”고 사느라 등이 휜 걸까. 우린 뭘 다듬고 있는 걸까. /박설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