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평화
/박일환
몽골 초원에선 키를 낮춰야 한다
아름다운 풀꽃들도 함부로 키를 높이지 않고
땅과 가까이서 붙어서 산다
그게 바람을 경배하는 자세임을
오래전부터 터득한 양과 염소들도
온종일 고개를 땅으로 향한 채
키 작은 평화를 제 입에 밀어 넣고 있으니
높아지기보다 넓어지려 애써 온
초원의 시간이
지금껏 달려온 사람의 발자국을 지우고 있다
-시집 ‘지는 싸움’(애지, 2013)에서
평화를 잃은 지 오래다. 모두 웃자라 키 큰 면모를 자랑하지만 내면은 연약하기 그지없다. 남을 누르고 높아지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온 시간들이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언 앞에 고개 떨군다. 몽골에 있는 평화를 이 땅에서 찾을 수 없다는 절망에 하루하루 서럽다. 발밑에 낮게 숨 쉬고 있는 작은 목숨을 생각하며 조심조심 살아가야겠다는 바람 소리를 시 속에서 들었다. /이민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