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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낙엽 설전(舌戰)

 

낙엽 설전(舌戰)

/천수호



그는 내게 아씨, 라 했다

충실한 노복처럼 극진했다



나는 제법 아씨답게 아그작아그작 밟으며

그의 노구를 걱정했다



걸음을 뗄 때마다 아씨, 아씨, 아씨

그는 내 몸을 극진히 떠받들었다



아씨란 말은 따뜻한 전생의 소용돌이라

아씨의 세대답게 그를 하대했다



아씨, 아씨, 아씨, 아씨

그는 한참 만에 바스러졌다



아씨, 라는 호칭과 함께 순장되었다



천 년은 족히 살 그의 비명도 흙발로 다져졌다

-- 천수호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2009, 민음사)

 

 

 

 

 

 

 

가을에 한번쯤은 낙엽을 밟으며 살금살금 걸어보았을 것이다. 마른 낙엽들이 쌓여있는 어느 길에서 발바닥을 통해 들어오던 싸한 느낌. 그래, 가을을 표현한다면 이런 느낌만큼 정확한 표현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가을. 전생에 내 몸을 극진히 떠받들던 소리, 아씨. 전생에 우리는 아씨였을 수도, 아씨를 떠받들던 이름 없는 몸종이었을 수도 있겠다. 다만 우리는 지금을 살고 있는 것이고 걸음을 뗄 때마다 아씨, 라는 소리를 곱씹으며 따뜻한 가을을 밟고 그 따뜻한 소리가 다져져 천 년 후에도 따뜻한 소리로 일어나길 바랄 뿐이지. /유현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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